◎유엔 등 전문직 진출 지원 우선과제/인재 발굴육성 정부차원 대책을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과학자이며 행정능력과 외국어 실력을 두루 갖춘 정근모 전 과기처장관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사무총장직 출마를 둘러싸고 정부의 입장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정부입장의 옳고 그름을 제쳐놓고, 이 토론 자체를 한국인의 국제기구 진출에 대한 언론과 정계의 관심으로 본다면 반가운 현상이다. 김철수 전 상공장관의 세계무역기구(WTO)총장 진출을 계획하였다가 차장지명을 얻은 우리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의 총재직에도 한국인을 천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많은 노력과 경비가 들고 전망이 확실치 않은 일이지만 우리가 국제기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환영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실상 우리가 더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할 분야는 30여개에 이르는 유엔기구의 중하위 전문직에 한국의 젊은이들을 심는 일이다. 또 얼마 안되는 한인 직원들의 승진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일이다.
93년 5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엔본부 직원(유엔섭외진흥국장)이 된 후, 필자는 수많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높기만 한 유엔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별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왔다.
올해로 유엔가입 6년이 되는 우리나라는 경제력을 인정받아 185개 회원국중 분담금 비율이 17위를 마크하고 있다. 그러나 한인 직원 분포를 보면 거의 모든 기구에서 국가별 적정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형편이다. 워싱턴소재 세계은행(IBRD)과 국제통화기금(IMF)을 제외한 28개 유엔기구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직 요원은 거의 2만명이 된다. 이중 한인 정식직원은 50명 안팎이니 우리몫을 찾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또 10여개에는 한명도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노동기구(ILO) 유엔개발계획(UNDP) 같이 크고 중요한 기구에서조차 한두자리의 하급직을 차지하는데 그치고 있다.
유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뉴욕 유엔본부의 경우 본인이 7월초 유엔 및 유엔기구 사업인 「아시아 청년TV」(Young Asia TV) 대표로 부임하면 한국은 한국인을 위한 공개경쟁시험에 합격, 임용된 사무관 8명만을 갖게 된다. 즉 이 방대한 기구에 국장은 고사하고 과장도, 계장도 없다는 말이다.
안보리 이사국으로 부각되는 우리 이미지에 비춰보면 믿기 힘든 일이나 역설적으로 이것이 고하를 막론하고 국제기구에서 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도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는 좀 더 많은 사람을 국제기구에 진출시킬 수 있는가. 첫째는 물론 해당분야의 실력과 경력, 그리고 외국어 구사력을 가진 인재를 찾는 일이다. 이제는 한국에도 이러한 자질을 갖춘 젊은이들이 적지 않고 또 이런 사람들이 유엔기구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은 실격요인이 없다는 정도이고, 그외에는 철저히 각국 정부의 외교활동으로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사무총장의 재임 실패에서 본 것처럼 고위직 진출을 시도할 때 강대국, 특히 미국이 반대하는 인사는 기용될 수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가 정근모 전 장관의 추천을 꺼리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거의 상식적 반응이다. 이 모든 것이 「유엔기구 직원들은 자국으로부터 어떤 영향도 받으면 안된다」는 유엔헌장 조문에 명백히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미 몇십년간 반복되어 온 국제사회의 관행이다.
다시 말해, 세계화를 외치는 우리 정부의 국제기구 외교의 우선순위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진출시키는데 두어져야 한다. 각 기구별로 목표를 정하고 힘있게 밀어야 한다. 한국인을 진출시킨 한국 공관은 수출실적을 올리듯 외교적 「점수」를 딴다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이것이 가능하리라 믿는다.
또 외무부를 비롯, 국제기구를 상대하는 정부부처에서는 한인 진출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를 육성하고 이들이 한 자리에서 상당기간동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주무국장이나 담당관이 1년이 멀다하고 바뀌는 관행은 시정되어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국제기구에 골고루 심어지고, 자리를 잡아 그 기구의 정책수립과 시행 등에 참여하는 날, 우리는 세계무대를 움직이는 나라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다.<유엔본부 특별기획국장>유엔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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