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했던 일제의 탄압이 끝나고, 해방후 미군정이 실시한 출판의 자유라는 극적인 변화에서 우리 출판은 새싹이 트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방후 출판 1세들의 활약으로 황무지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아가던 출판은 한국전쟁으로 일시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후 우리 출판은 피란지에서의 연명과 환도 후의 정착을 거쳐 미흡하나마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그동안 출판계에 불어닥친 여러 일들을 어찌 다 적을 수 있겠는가. 후일의 출판사가에게 맡기기로 하고, 요즘 일어나는 일 한 두가지를 적어본다.
우선 책의 정가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나라 책의 정가는 많은 우여곡절 끝에 정착된 것이다. 한국전쟁 전에는 지방정가라하여 지방에서는 5%쯤 가산한 정가로 판매되어 왔다. 인플레가 심했던 피란지에서는 아예 정가 대신 「물가에 준함」이라는 표시마저 있었다.
많은 나라에서는 부가가치세가 책값에 얹혀 거래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없다. 우리들의 정책건의가 받아들여진 것으로 정부가 잘한 일의 하나이기도 하다. 또 하나 우리의 건의에 따라 국회의원들이 창작물의 대가인 「인세」를 면세조치한 때도 있었으니 창작활동을 장려하는 문화국가의 면목을 세웠던 것이지만 지금은 옛말이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책의 정가를 없앴다가 부작용이 커서 환원했고, 영국은 책의 정가를 없애서 아직도 혼란에 빠져있다. 책의 정가엔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된다. 책의 정가를 출판사가 정하는 것도 출판의 자유에 속하겠지만 저자는 그 책의 내용으로, 출판사는 그 책의 내용에 걸맞는 정가로 경쟁을 하는 것이다. 저자에게는 내용에 따라 학계와 독자의 평가가 내려지고 출판사에게는 정가에 따라 경영부진이라는 벌이 내려진다.
출판사의 정가정책은 출판사가 사활을 걸고 독자의 판단에 호소하는 것이다. 일부 지각없는 출판사들이 책의 정가를 놓고 이상한 짓을 한다고 하나, 이같은 행태는 독자의 반발과 출판계 스스로의 자정작용으로 없어지게 되는 것이 출판의 시장원리인 것이다. 또한 넓은 의미의 힘있는 독자측에서는 철퇴를 가해왔다.
우리의 주무부가 아닌 권력있는 딴 곳에서, 허약하고 만만한 우리 출판계 일각에 손을 대려하고 있다. 경제논리, 가격파괴, 소비자 보호라는 구호가 예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출판인들에게는 우습게 들린다.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고 국내외의 출판사정을 얼마나 잘 아는 분들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가. 책이 많이 팔리면 값은 경쟁원리로 저절로 싸지는 법이고(우리나라의 책값은 외국의 3분의 1정도이다) 이것이 소비자에게 구매촉진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입시제도가 해마다 바뀌는 희한한 나라에서 학습참고서 정가를 건드리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다. 이는 일반도서, 학술도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모두 같은 구독료를 받고 있는 신문으로도 퍼지게 된다. 좀더 넓고 깊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쇠뿔을 건드리다가 소를 죽이는 꼴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책의 정가는 소비자 보호논리 하나만으로는 해결 안되는 여러가지 문제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출판계를 우울하게 만든 또 한가지는 출판사, 출판인에게 주어지는 시상제도이다. 몇 안되는 이런 시상제도 중에서 하나는 저작과 제작의 두 기둥에 초점을 맞추어 오던 것이 언제부터인지 가지를 쳐서 상의 종류가 늘어나는 바람에 원래의 빛이 흐려졌다는 것이다. 해마다 부풀려진 상의 양산은 주는 쪽에서는 흡족할지 몰라도 받는 쪽이나 출판계로서는 어리둥절하다. 원점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또 하나는 이름있는 분의 호를 딴 권위있는 상의 5개 시상분야에서 언론·출판과 문학의 두 분야가 금년도 공고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출판을 열심히 하면 이 상을 탈 수 있겠다고 벼르던 많은 출판인들이 허탈해 하고 있다. 출판사가 쓰러지고 서점들이 부도가 난다는 기막힌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요즘 이럴수록 이 상에서 언론·출판 부문이 내년부터라도 부활되었으면 한다. 어떤 일이든 양면성이 있으므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비교하여 신중히 처리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