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자금 이어 한보 9백억설까지/통제불능의 정가 파국우려 긴장감대선자금 문제가 정치권을 대란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한보사태가 김현철씨 비리를 드러나게 하고 급기야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으로까지 비화, 통제불능의 정치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여권은 대선자금 문제를 놓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고, 야권도 공세를 취하면서도 어느 수준까지 가야 할지를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파국을 우려하는 소리들이 제기되고 있으며 그 불길한 조짐들, 위기감이 정가의 뒤안길을 휩쓸고 있다.
사실 대선자금이 갈수록 파괴력을 더해 가는데는 여권의 안이한 대응이 한 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여권은 그동안 『대선자금은 결코 열리지 않을 「판도라의 상자」다. 열면 여당도 죽고 야당도 죽는다』고 낙관만 해왔다. 대선자금 문제만 불거지면, 여권은 침묵으로 국면을 넘겨왔다.
그러다가 검찰의 한보 수사과정에서 대선자금의 의혹들이 불거지자 여권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 포괄적 언급으로 대선자금 문제를 매듭지으려 했다. 포괄적 해법은 김대통령이 92년 대선때 법정선거한도를 지킬 수 없었던 정치현실을 시인하고 앞으로 고비용정치구조를 혁신, 오는 12월의 대선을 「돈 안드는 선거」로 치르겠다는 다짐을 한다는 내용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급박하다. 방증이 아닌 구체적 증거들이 하나 둘 흘러나오면서, 대선자금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정태수씨가 대선자금으로 수백억원을 전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태수씨가 네 차례에 걸쳐 9백억원의 대선자금을 건넸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고 야당은 『정씨가 김영삼 후보에게 8백억원을 주었다』고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 이밖에도 현철씨가 대선자금 잉여금을 기업계좌에 분산, 관리했다는 사실도 검찰 주변에서 흘러 나오고 있으며, 김대통령이 당선 이후 취임때까지 기업들로부터 엄청난 액수의 당선축하금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포괄적 언급만으로는 끝모르게 터져나오는 의혹들을 덮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여권은 그야말로 막다른 벼랑에 몰려 있다. 그래서 『김대통령이 옥쇄를 해야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마저 제기되고 있다. 옥쇄론에는 김대통령이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거국내각을 구성하는 방안과 아예 여야 대선자금을 비롯, 정치자금의 내막을 모두 밝히자는 방안이 있다. 전자는 일단 현재의 3당구도를 유지한채 대선정국을 끌고가자는 것이고, 후자는 3김 공멸을 초래할 수도 있는 극약처방을 하자는 것이다.
야당도 대선자금 문제가 예측불허의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있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하거나 한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당한 봉합을 택했다가는 국민들로부터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야당은 『김대통령의 하야는 반대한다』고 말하면서도 공세의 고삐를 강하게 쥐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야당은 『우리가 안고 있는 대선자금의 약점은 여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극히 적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선자금 문제는 누구도 효과적으로 제어하지 못한채 점차 확산일로로 치닫고 있다. 막연하게 거론되던 「정계개편」이 대선자금의 파장으로 현실화할 수도 있으며, 이 와중에서 비산하는 돌팔매에 맞아 낙마하는 대선주자들이 발생, 뜻하지 않게 대선정국을 정리하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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