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여년 전,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닐 때의 일이다.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휴일날 학교에 갔다가 대여섯명이 함께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게 됐다. 그런데 같이 간 여학생들이 자장면을 먹는 모습이 바라보기 안쓰러울 정도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머리칼로 발을 친채 한 손에는 휴지나 손수건을 꼭 쥐고 입언저리를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남학생들과 같이 식사하자니 수줍기도 하고, 자장면 먹던 중에 입가에 뭐가 묻을까봐 신경쓰이고 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나마도 남학생들이 식사를 마치자 자기들은 삼분의 일도 채 못먹은 상태였는데도 서로 눈치를 보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요즘 여학생들은 그때와 달리 숫기가 넘치며 음식 앞에서 쭈뼛거리는 일이 없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이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있다. 그것은 혼자 술마시는 여자 이상으로 혼자 식사하는 여자 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여성의 사회 활동과 바깥 나들이가 잦아진 이 시대에,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도 식사때만큼은 도무지 외로운 걸 못 견디거나 외롭다는 인상을 주기 싫거나,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민감하게 의식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배는 고픈데 같이 식사할 마땅한 사람이 없는 경우, 또는 모두 외출한 텅빈 사무실에서 혼자 끼니때를 맞게 되었을 경우에 여자들은 어떻게 식사를 해결할까? 커피 뽑아다놓고 서랍속에 든 먹다남은 과자 꺼내서 요기하거나, 이것도 다 다이어트에 좀더 신경쓰도록 하라는 신의 뜻이려니 여겨서 그냥 굶고 넘어가거나 할 것이다.
혼자 당당하게 밥집에 들어가서 맛있게 밥 먹을 줄 아는 여자, 이런 여자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자이며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여자라고 보면 틀림없다.
멀뚱멀뚱 쳐다보는 이가 있어 신경쓰일 땐 종이에 이렇게 적어서 주인을 통해 전달하면 된다.
『밥 먹는 거 처음 봐요?』
◇원재길씨는 59년 서울에서 태어난 시인이자 소설가로 「겉옷과 속옷」 「오해」 등의 소설과 시집 「지금 눈물을 묻고 있는 자들」을 펴냈다. 시인인 아내 이상희씨와 일곱살 된 딸 새록이를 키우며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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