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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배제한 공기업 민영화(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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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배제한 공기업 민영화(사설)

입력
1997.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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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제가 정부주도의 관·민혼합체제에서 민간주도의 시장경제체제로 바뀌어 가고 있는 과도기에 있다. 우리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그렇다. 미국에 의해 상징적으로 대표되는 시장경제체제가 다수국가가 채택해 온 관·민혼합체제나 구공산권의 국가경제체제보다 경제적으로 능률적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도 세계적인 개방체제에서 경쟁력을 갖자면 체제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그러나 우리의 병인 「조급」은 오히려 우리 경제의 장래가 걸려 있는 이 역사적인 과제를 그르칠 수가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기간안에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룩하는 일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변화의 폭과 속도를 주어진 환경과 여건에 맞춰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공기업의 민영화는 이러한 적응원칙이 적용돼야 하는 부문의 하나다.

재정경제원이 지난 7일 입법 예고한 한국통신, 한국중공업, 가스공사, 담배인삼공사 등 4개 대형공기업의 민영화 추진방안은 현실적인 여건으로 비춰볼 때 그런대로 합리적이라 하겠다. 재경원 방안은 주식의 동일인 지분한도를 10% 이내로 한정, 재벌그룹 등 소수대주주의 기업지배를 방지하고 전문 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체제를 도입키로 한 것이 핵심이다.

특히 동일인 지분제한 규정은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심화를 막기 위해 주식이 완전 매각된 이후에도 존치시키겠다고 명시했다. 이들 4개 공기업의 민영화에 눈독을 들여온 재벌그룹들의 반발이 강렬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럴 만하다. 사업성, 수익성, 자산규모로 봐 이 공기업들은 하나같이 재계의 위상을 바꿔놓을 수 있는 기간사업이요 황금사업이다.

지난해 이들 기업들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15조8,900억원과 6,800억원이었다. 자산은 한국통신 14조1,500억원, 담배인삼공사 3조4,600억원, 가스공사 3조3,000억원, 한국중공업 2조8,400억원 등 23조7,200억원이 된다. 이들은 경영도 양호한 우수 공기업들이기도 하다. 공기업이라 해도 경영이 잘 된다면 굳이 민영화를 서두를 이유가 없고 민영화한다 해도 재벌그룹에 넘길 까닭이 없는 것이다. 포항제철이 예시하듯 공기업이라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보사태 등이 보여주듯 민간 재벌그룹이라도 나라의 지축을 뒤흔드는 부실의 대란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시장경제가 마치 경영과 경제의 바이블처럼 칭송되고 있으나 그것도 경제 정치 사회 등 제반여건이 다같이 시장경제체제로 성숙돼야지 그렇지 못할 때 경쟁력향상 등 기대효과를 낼 수 없다. 우리나라 재벌그룹들의 행태 즉 경제력집중심화, 정경유착 분식결산 비자금불법조성 등 부패구조, 절대군주적인 오너경영체제의 지속과 세습화 등도 시장경제의 효율을 저해하는 가공할 장애물이다.

재법그룹들이 개방·투명·도덕경영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유망한 대형 공기업의 민영화를 이들에게 넘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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