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일각의 때아닌 「고향논란」은 여러모로 시대역행적이다. 논란의 발단은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의 「황해도 발언」이었다. 이대표는 지난 5일 「황해도민의 날」 행사에서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황해도민의 일원으로 오늘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다렸다는 듯 국민회의가 날을 세웠다. 『명분을 내세울 때는 지역할거주의 타파를 앞세우고, 자신에게 득이 된다 싶으면 지역주의에 호소하는 것은 이중적이고 기회주의적인 행태다』정치공세의 성격이 짙긴 하나 국민회의의 비판이 전혀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대표는 지난달 충남방문 때 「나는 예산사람」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번엔 「황해도 사람」이라고 했으니, 편의적 고향 택하기란 사시를 받게도 됐다. 이대표는 황해도 서흥태생이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 일부 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예산은 선대가 대를 이어 산 곳이다.
고향논란은 비단 이대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수성 고문을 둘러싼 「TK(대구·경북)출신」시비도 마찬가지다. 이고문은 함남 함흥태생이고, 어린시절 광주와 평양에 잠깐씩 거주한 것을 빼곤 줄곧 서울에서 자랐다. 그런 그가 TK출신으로 분류되는 것은 선대가 대대로 경북 칠곡에서 살았던 덕분이다. 이고문 자신 대구·경북을 「마음으로 반겨주던 따뜻한 고향」이라고 늘 말해오기도 했다. TK대표성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야 하는 인사들이 이고문을 두고 「사이비 TK」라고 공공연히 힐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포항보선 출마를 준비중인 민주당 이기택 총재도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북 영일 태생인 이총재는 정치적 고향인 부산을 떠나 지리적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가며 귀거래사를 읊고 있는데, 『뒤늦은 연고 주장』이라는 손가락질이 한창이다. 정치인들의 고향 내세우기는 지역주의의 또다른 표현이어서 씁쓸하기도 하고, 고향 표를 향한 처절한 몸짓이어서 안쓰럽기도 하다. 정치가 뭐길래 고향쟁탈전까지 벌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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