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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몸부림 일 공산당/시이 당서기국장 인터뷰(지구촌 확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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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몸부림 일 공산당/시이 당서기국장 인터뷰(지구촌 확대경)

입력
1997.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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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개인숭배 하는한 교류 안해”/최근 일본에선 군대위안부 침략전쟁 등 교과서 삭제 논의 진행중인데 절대 그럴순 없어/한국과는 이해폭 넓어져… 방한 희망일본 공산당이 변신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마쓰모토 젠메이(송본선명) 의원이 지난달 국제의원연맹(IPU) 총회 참석차 방한한 데 이어 후와 데쓰조(불파철삼) 위원장이 연내 방한을 타진중이다. 5·1영국총선에서 나타났듯이 전세계를 휩쓰는 신보수주의의 물결속에서 생존을 위해 변화하는 일본 공산당의 모습을 당서열 3위이며 신세대 지도자로 각광받고 있는 시이 가즈오(지위화부·43) 서기국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조명해본다.<편집자 주>

―한국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 공산당이 원하는 것은.

『인접국가로서 서로에 대한 이해의 장을 넓히는 것이다. 우선 우리 당의 진면목을 알리고 싶다. 또 당기관지 「아카하타(적기)」의 특파원(미국 등 12개국에 14명 파견 중)도 파견하고 싶다』

―후와 공산당위원장은 최근 한국정부와의 교류방침과 방한 의사를 밝혔는데 한국정부와 사전 교감이 있었는가.

『없었다. 다만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IPU총회에 참가한 우리당 마쓰모토 의원이 독립기념관을 방문해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강조하자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 공산당 의원으로서는 처음 한국을 공식 방문한 마쓰모토 의원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도 만났다. 조건만 조성되면 후와 위원장은 물론 나도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

―일본공산당이 한국과의 교류를 추진한 변화의 계기는.

『상황과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91년 남북 유엔동시가입이 이루어졌고 조선반도에 2개의 정부가 있다는 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받게 됐다. 「남조선」을 「한국」이라고 불러도 한국만이 유일한 정부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없어졌다. 또 과거에는 한국이 군사정부라는 벽이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문민정부가 탄생해 희망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3월 상임위원회에서 정식으로 우리당의 새 입장을 결정했다』

―일본공산당은 76년 제13회 전당대회에서 복수정당제와 정권교체, 언론자유를 인정하는 「자유와 민주주의 선언」을 채택, 주변국의 공산당과는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일본 공산당과 북한 공산당의 차이점은.

『우리는 60년대 들어 중국과 소련의 패권주의와 제국주의, 독재주의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 노동당과는 한때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지만 60년대 후반부터 상호 비판적 시각을 갖게 됐다. 그들은 67년 무력남침 등의 내용을 담은 10대 강령을 만드는 등 호전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 때문에 우리당은 북한 방문단을 파견, 김일성 주석을 직접 만나 무력침략은 안된다고 설득한 적도 있다. 70년대에는 김일성 개인숭배의 확산때문에, 80년대는 대한항공기 폭파사건(87년) 등 반복되는 국제적 테러사건 때문에 단절상태가 이어졌다.

특히 우리당은 대한항공 폭파사건 당시 이 사건이 그들의 소행이라고 가장 먼저 밝혔다. 「아카하타」의 특파원이 찍었던 김현희의 소녀시절 사진을 제공해 그가 북한의 공작원임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국민들은 일본공산당이라고 하면 무조건 북조선을 떠올리는 것 같은데 우리당은 지금까지 그와 같은 정치체제와 투쟁해 왔다』

―현재 북한과의 교류는 일절 없는가.

『없다. 국제학술행사 등에서 만나는 경우는 있어도 공식적으로는 단절상태이다. 그들과의 교류재개는 현재 우리 당으로서는 매우 어렵다. 북조선에서는 개인숭배가 계속되고 있는 등 변한 것이 없다』

―현재의 한반도정세에 대한 견해는.

『조선반도 문제는 군사력이 아니라 평화적인 대화로 풀어야 한다. 북조선이 4자회담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보도가 있는데 조선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지금까지 흘러온 평화적인 흐름을 중시하고 있다』

―군대위안부 문제 등 한일간의 현안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우리당은 일본정부가 역사적인 과오, 즉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회피함으로써 양국민의 우호관계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하지만 일본의 정치가들은 반성은 커녕 계속해서 역사적 사실을 은폐·왜곡하고 있다. 이것은 침략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 지배를 주도했던 세력이 단죄받지 않고 전후에도 간판만 바꾸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위안부 문제는 일본 정부가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국가의 책임에 의한 국가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케시마(죽도·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1905년 시마네(도근)현에 독도를 편입하는 조치를 취한 것, 그 자체는 국제법적으로 근거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1905년이라는 시점은 일본의 제국주의가 한국을 합병하는 과정이어서 외교권이 실질적으로 박탈당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을 근거로 냉정하게 대화로 풀어나가기를 바란다. 또 최근 일본에서는 군대위안부와 침략전쟁 등에 대한 교과서 기술을 삭제하자는 한심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이같은 흐름을 방치한다면 일본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로부터도 신용을 얻지 못한다』

―일본공산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대약진했고, 지방자치 단체장 및 의회선거에서도 대단한 강세를 보였는데.

『대안을 제시하는 정책정당으로서 국민의 신뢰가 두터워지고 있다. 21세기에 수권정당이 되기위해 대비하고 있다』<도쿄=김철훈 특파원>

◎일본공산당 연표

▲1922년 7월15일 야마가와 히토시(산천균), 나베야마 사다치카(과산정친), 사노 마나부(좌야학) 등에 의해 결성

▲28년 일본정부 일제 검거령으로 지하활동

▲45년 도쿠다 규이치(덕전구일), 시가 요시오(지하의웅) 등 소위 「옥중 18년조」 출옥, 공산당 부활

▲76년 제13회 전당대회 「자유와 민주주의 선언」 채택

▲96년 10월 총선서 26석 획득, 제3야당 부상

□약력

▲1954년 치바(천엽)현 출생 ▲73년 일본공산당 입당 ▲79년 도쿄(동경)대 공학부 물리학과 졸업 ▲87년 당 준중앙위원 ▲88년 당중앙위 서기국원 ▲89년 당중앙위원 ▲90년∼현재 서기국장 ▲93년∼현재 중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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