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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석양론·태양론(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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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석양론·태양론(장명수 칼럼)

입력
1997.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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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이 결혼할 생각을 안한다. 같이 살고 싶을만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몰라도 결혼을 위한 결혼은 안하겠다고 한다』라고 걱정하는 부모들을 서울에서 자주 만났는데, 일본에 와보니 그런 현상이 사회문제가 될 정도다. 젊은 여성들의 결혼기피와 만혼풍조, 그로 인한 신생아 감소와 인구의 고령화가 국가장래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경제의 거품이 걷히면서 지난 몇년간 불황을 겪고있는 일본에서는 요즘 자성론과 함께 미래에 대한 논쟁이 활발하다. 그 논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인구의 고령화와 첨단기술의 한계다. 일본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석양론과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태양론은 각기 아래와 같은 주장을 펴고 있다.

석양론자들은 일본의 경제와 인구가 함께 노령화하고 있다고 걱정한다. 첨단기술의 개발과 모방이 한계에 이른데다가 출생률은 낮아지고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나 노인 부양에 허덕이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키하바라(추엽원)에 가보라. 일본제품이 즐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컴퓨터 등 첨단제품의 핵심기술은 대부분 미국제이고, 그 아래로는 대만제 등이 맹렬하게 따라오고 있다. 암기위주의 교육, 개인 위에 집단의 이익을 두는 문화가 전후 50년 일본의 경제기적을 이룬 추진력이었으나, 이제 그런 방식으로는 첨단산업에 도전할 수 없다. 일본에는 빌 게이츠가 없다는 것이 최대 문제다』

인구문제는 더 심각하게 보인다. 결혼제도에 묶이지 않으려는 여성이 점점 늘어나 20대 여성의 미혼율이 49%나 된다. 남자도 비슷한 경향이어서 40대 전반은 17%, 후반은 11%가 미혼이다. 2015년에는 65세이상 인구가 전인구의 27.4%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같은해 예상치인 한국 10%, 미국 14%와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가임여성 1인당 출산율은 1.4명, 신생아가 노인인구를 대체하지 못할뿐 아니라 인구자체의 감소를 눈앞에 두고 있다. 55년 일본의 인구는 9,000만명 남북한은 3,000만명으로 3대 1의 비율이었으나, 2015년에는 일본 1억2,500만명 남북한 8,000만명으로 3대 2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힘든 나라, 인구 3명당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인 나라를 상상해 보라. 정부 재정은 노인연금으로 바닥이 나고, 국민의 생활수준은 내려갈 것이다. 오늘의 경제기적을 이룬 세대가 그 부흥을 무덤으로 가져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석양론자들은 우려한다.

『석양론은 지나친 걱정이다. 일본인의 창의성과 질서의식을 억누른다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신만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싱가포르 대만 한국 중국 등이 고도성장으로 일본을 추격하고 있지만, 그들의 기술과 자본은 일본과 엄청난 격차가 있다. 또 홍콩이 중국에 귀속되면 결국 일본이 아시아의 금융중심이 될 것이다』라고 태양론자들은 말한다.

일본은 현재 인구밀도가 너무 높은 나라이므로 인구의 감소가 오히려 생활환경을 쾌적하게 하고, 숨막히는 토지난도 완화될 것이다. 일본의 기술이 벽에 부딪쳤다고 하나, 캐넌의 컬러 카피 머신, NEC의 데스크 탑 컴퓨터, 카시오의 디지털 카메라 등을 보면 비관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은 기술에서 앞섰지만, 일본의 탁월한 경영기술까지 능가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태양론자들의 견해다.

일본은 지금 석양인가, 계속 중천에 떠있는 태양인가라는 논쟁은 일본의 강점과 약점들을 낱낱이 들춰내고 있다. 그들은 생산적인 토론으로 불황을 넘고 있다. 불황, 불황 하지만 사실 일본의 작년도 성장률은 3.2%로 선진국중 1위였다. 그들은 항상 지나치게 긴장하고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 같다.

우리의 미래는 어떨까. 반성도 토론도 없이 끝없는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고 있는 서울…. 오늘뿐 아니라 내일 역시 암담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에 우리는 오늘의 혼란을 더 지겨워하고 있는게 아닐까.<편집위원·도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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