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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차따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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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차따라:1)

입력
1997.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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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인듯 안개인듯 고산의 다향 꽃가에 맴돌고…/해남 토말서 뱃길로 12㎞/부용동 다암엔 다시가 흐르고/‘찻꾼들의 낙원’5월25일을 「차의 날」로 정한 것이 15년째이다. 그만큼 우리의 차는 중흥기를 맞고 있다. 차문화는 이제 문화의 한 장르로 독자적 계층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전통 차문화가 대중속의 문화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차인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한국일보는 차의 달인 5월을 맞아 차문화 정립과 확산에 보탬이 되도록 새로운 차문화 유적 발굴과 일반인이 알기 쉬운 차의 기초, 차계의 소식 등을 매주 1회씩 싣는다.<편집자 주>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반도의 땅끝(토말)에서 뱃길로 12㎞. 보길도에 차의 향기가 선명한 차문화유적지가 있다면 차전문가들도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보길도하면 우리나라 토목 건축 조경의 극치인 세연정과 고산 윤선도(1587-1671)를 떠 올린다. 윤선도하면 또 30여년 이 섬에 은거하면서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국문학사에 우뚝한 대시인을 생각한다.

보길도는 주산인 남쪽의 격자봉(453m)과 마주 보고있는 북쪽의 오운산(250m)이 200∼300m의 높고 낮은 봉우리를 양팔로 둥글게 싸안고 있는 모양의 동서 12㎞, 남북 8㎞, 3,690정보 크기의 섬이다.

나즈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산골은 모두가 고산의 유적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골 안쪽은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듯 하다해서 부용동이라 했다. 연꽃의 중앙이 밋밋해 흙으로 볼록 튀어나온 산을 만들어 조산이라 했다. 건물이나 정원 등 기발한 조형기법 뿐 아니라 섬 전체를 조경하려 한 고산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고산의 솜씨인 세연정, 조산, 오운산 허리 45도 경사진 바위산에 꾸민 돌문(석문), 돌연못(석담), 돌샘(석천), 돌폭포(석폭), 돌대(석대), 희황교 등 동천석실도 걸작이지만 정작 찻꾼들의 관심거리는 고산의 차유적지이다.

고산의 차유적을 하나하나 찾아낸 장본인은 3대째 이 섬에서 살아온 강종철(62)씨. 40년전 보길초등학교 교사시절, 그때 사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던 교육감이 교사들의 여름방학숙제로 고산연구논문을 제출하게 한 것이 고산과 인연이 됐다. 섬에 살고있는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 구전을 받아 고증을 한 것이다.

특히 차바위(다암)는 20년전 고인이 된 박대길(당시 65세)씨를 통해서였다. 차시(다시) 석실모연이 기록돼 있는 부용동팔경은 지난 72년 고산의 세째 부인이었던 설씨 부인의 종가에서 족보를 뒤지다 족보속에 끼여있는 것을 찾아냈다. 한지 반절지 2장에 붓글씨로 씌어진 부용동팔경은 현재 보길도 선착장에서 관광식당을 하고있는 고산의 10대손 윤창하(57)씨와 광주의 윤모씨가 소장하고 있다. 부용동팔경을 작자미상의 것이라고 일축하지만 강씨는 고산의 작품이 틀림없다는 주장이다.

고산이 간지 326년.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부용동 곳곳을 둘러보면 아직도 고산의 차향을 고스란이 느낄 수 있다. 오운산 중턱 솟아오른 바위절벽 꼭대기. 아랫변 3m 윗변 2m가량 마름모꼴 펑퍼짐한 바위에 앉으면 남쪽 발아래 펼쳐지는 부용동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바위에 가로 1m 세로 50㎝ 크기의 사각형을 깊이 5―7㎝ 정도로 파내 찻상(다상)을 만들어 놓았다. 차바위라 했다. 차바위 1m가량 아래에는 넓직넓직한 돌로 차부뚜막을 만들어 찻물을 끓이도록 했다.

찻물은 이 바위 오른쪽 10여m 아래에서 흘러 내리는 돌샘(석천)의 물을 길어다 썼다. 차바위 위쪽 3m 거리에는 또 축단(8×5×1.5m)을 쌓아 한평이 될까말까한 정자를 짓고 석실이라 했다. 차를 마시며 책을 읽고 발아래 펼쳐지는 부용골짜기를 물들이는 저녁노을을 즐겼다.

건너다 보이는 주산 격자봉 아래 살림 집, 낙서재 왼쪽 골짜기에 차밭을 만들었다. 차나무골이란 이름이 세월이 지나면서 차남골로 바뀌었다. 또 석실 정자앞의 높이 1m가량 솟아오른 큼직한 두개의 바위를 이용, 아래쪽 조산에서 줄을 연결해 케이블 카를 만들었다. 음식 등 간단한 물건이 들어가는 통을 매달아 올려다 썼다.

저녁 바다 바람 향긋한 연기 담고와

높고 험한 산에 들어 석실에 흩어진다

옛 부뚜막엔 아홉번 끓인 선약 남았고

맑은 물 길어 찻물 다린다.

(만풍취해인향연 산입차아석실변 구전단성여고조 일다비청천)

석실 부엌의 찻물 연기되어 가득하다가

구름인듯 안개인듯 꽃가에 맴돈다

바람에 싣겨 날아가 섬돌에 머물다가

달빛따라 퍼져나가 냇물에 숨는다.

(석실다주기석연 여운여무옹화변 수풍욕거류 여월무단경숙천)

석실모연이란 이 차시는 고산의 차에 관한 경지를 가름할 수 있는 작품이다.

보길도에서 고산의 유적을 찾는 사람이면 강씨를 찾는다. 때문에 지난 35년간 산아래 부용동에서 동천석실까지 800여m를 1주일 평균 두번을 올랐다.

그동안 4,000번을 올랐다는 계산이다. 마침 지난 1일밤 폭풍주의보로 보길도행 배가 묶인 사이 전남 벌교 진광차밭 한상훈(57)씨가 밤새 만든 올해 햇차를 얻어 차바위 찻상에 차를 올렸다.

『고산할아버지께 이렇게 차를 올리는 것이 오늘 처음이네요』 강씨는 지금까지 이곳에서 차를 올리는 것을 왜 생각치 못했느냐며 고개를 깊이 숙이며 읍을 했다.

▷길잡이◁

태풍주의보가 내려지면 배는 떠나지 않는다. 토말이나 완도선착장에서 하루 4번정도 배가 떠난다. 주말이나 연휴면 수시로 증편을 한다. 토말선착장: (0634)33―4269 강종철씨연락:(0633)53―6321<김대성 편집위원>

◎알기쉬운 차 입문/차라고 다 차가 아니다

차나무는 산다화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1월 평균기온이 영하 5도 이상인 따뜻한 남쪽에서 자란다.

차나무는 잎의 크기에 따라 대엽종과 소엽종으로 나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차나무는 소엽종으로 2∼3m까지 자라지만 대엽종의 차나무는 6∼18m 이상으로 자란다. 잎은 치자나무와 같이 타원형으로 잎둘레에 톱니를 가지고 있다. 꽃은 늦은 가을부터 초겨울까지 황금색 꽃술과 순백색의 꽃잎으로 피어나는데 그 생김새는 찔레꽃과 같다. 꽃과 열매가 마주 본다해서 실황상봉수라고도 한다. 곡우(4월20일)를 전후한 이른 봄부터 차나무의 움이나 싹을 따서 솥에 덖거나 쪄서 만든 것을 차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입하(5월5일)를 전후한 시기를 차만들기 좋은 때라고 한다. 황매화와 오동이 피는 지금이 바로 차만들기의 적기이다.

차는 차나무 잎에서 딴 찻잎으로 만들어진 음료인 녹차, 홍차와 발효차인 오룡차 등을 말한다. 그외의 식물의 잎이나 뿌리 또는 꽃을 끓이거나 우려서 마시는 음료는 차와는 구분하여 탕이라고 한다. 커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 왔을 때 고종 임금과 그 측근에서 커피를 가배탕이라고 한 것만 보아도 차와 탕의 구분은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까지도 지켜진 것을 알 수 있다. 일반명사가 된 인삼차, 생강차, 감잎차, 쌍화차, 오미자차 등은 인삼탕, 생강탕, 감잎탕, 쌍화탕, 오미자물로 쓰는 것이 옳다. 물론 차탕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옛문헌 속에서도 적지 않은 다탕이라는 기록이 나오고, 일본에서도 차노유란 표현으로 다도를 뜻하는 것을 보아도 끊여서 마시는 음료에 탕이라는 표현이 뒤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과 몇해전만 하여도 아니 지금도 대다수의 다방에는 아직 차가 없거나 커피가 주된 음료이다. 다방에 차를 마시러 간다고 하고, 마시는 것은 커피나 다른 음료이다. 이렇듯 차 없는 다방, 차 없는 차례. 이것은 바로 우리문화의 허약한 현장이기도 하다. 전통 찻집이 하나 둘 늘어나면 커피 전문점이 넷 다섯으로 늘어나는 오늘의 현실.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은 차림표 끝에 녹차라는 글자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점이다.<박희준 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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