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과 연출과 연기·연극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론 관객이 만나는 것은 배우이고 따라서 대부분 연기를 꼽을 것이다. 그러나 전문화한 관객이라면 이 세 요소가 상호전제 관계임을 알 것이다. 좋은 연기자도 유능한 연출 없이는 결코 실력을 발휘할 수 없으며 연출과 배우의 능력이 뛰어나도 원래 약한 희곡을 바탕으로 질 높은 작품을 생산할 수는 없다.작가 정복근과 연출가 한태숙. 최근 몇년간 무척 낯익은 조합이다. 그 둘이 동숭아트센터가 제작한 「나, 김수임」에서 다시 만났다. 연기자 윤석화와 한명구의 참여로 재작년 「덕혜옹주」와 거의 같은 인적 구성을 형성했다. 물론 과거의 평가가 다음 작품까지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일단 성과가 좋았던 인적 결합에 대해 관객이 안심하고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정복근은 상당기간 과거사에 천착해 왔다. 「나, 김수임」 역시 해방 후 현대사를 바탕으로 한다. 김수임은 반공극 등을 통해 이미 알려진 인물이지만 이강국이라는 공산주의자를 사랑한 나머지 간첩행위를 하다 사형당한 지식인 여간첩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작가가 그린 두 남녀는 왜곡된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경계하기보다는 막연하나마 인간정서를 믿고 의지하려다 희생되는 비극적 인물이다.
「나, 김수임」은 시처럼 간결하다. 그러나 시적 힘이 충분히 살진 못했다. 이유는 크게 두가지. 형태상으로는 자코메티의 조각처럼 핵심적 뼈대만 남긴 구조이지만 제거된 부분이 마치 블랙홀처럼 내적 힘으로 응결된 상태는 아니었다. 또 그들의 사랑과 남과 북에서 각기 이적혐의로 처형되는 아이러니를 이강국의 비극적 영웅의 면모를 약화시키며까지 감상적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의 압박이 너무 강해서인지 이완의 느낌이 거의 없었다. 한편으로는 힘이 약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드럽지 못했다.
그러나 거대한 기둥과 들보로 틀을 짜고 길고 넓은 천을 드리운 무대는 여러 모로 유효했다.
다만 윤석화는 아직 대화체로 보기 어려운 대사로 인해 다른 연기자와 조화를 못 이루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차유경 역시 해설자 역에서는 말보다 낭독에 가까웠다. 이 연극이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오세곤 가야대 교수·연극평론가>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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