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사·환생·외계인·드라큐라·해골…광고에도 세기말 현상이 살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90년대 들어서 대중문화 속으로 넓게 번진 세기말 소재가 단편적이긴 하지만 광고에 이용되는 경우가 하나둘 늘고 있다.
소설 「퇴마록」 「천년의 사랑」과 영화 「은행나무 침대」, TV드라마 「8월의 신부」 등 신비주의를 소재로 한 문화현상들이 최근 급격히 젊은 층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만화에서는 이런 소재가 헤아릴 수도 없다. 외계인과 악마를 소재로 한 외화 「X파일」의 선풍적인 인기, 악마주의를 공공연하게 앞세우는 헤비메탈 그룹의 등장도 새로운 「밀레니엄」(1000년)을 눈앞에 두고 예사롭지 않게 번지는 세기말 현상이다. 물론 광고가 대중문화만큼 뚜렷한 메시지로 세기말 풍조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들어 알게 모르게 이런 경향이 번져가고 있다.
유럽의 웅장한 고성 분위기의 세트를 배경으로 한 대우전자 TV 「개벽 매직」광고. 이 광고에는 검은 두건을 뒤집어 쓴 마법사가 등장한다. 마법사가 신비로운 모습으로 분위기를 잡는데다 국립극단 합창단이 배경음악으로 「마법사가 온다」는 뜻의 이탈리아어 「비에니」를 장중한 소리로 반복해 흡사 이교도 모임을 연상케 한다. 이 마법사는 곧 TV로 바뀌어 매직영상기능으로 흐릿한 화질을 개선한다는 제품의 특징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주)태평양의 라네즈화장품이 지난해 가을상품 캠페인으로 내놓은 광고 「천년후애」는 당시 유행했던 「환생 신드롬」을 소재로 했다. 모델 김지호가 검은 립스틱을 바르고 연인과 헤어지는 안타까운 심정을 연출한 이 광고는 시·공을 뛰어넘은 사랑을 그린 영화 「은행나무 침대」의 영향을 받았다.
대우통신의 노트북 컴퓨터 솔로 광고에 등장하는 외계인도 세기말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한 우주열차 속에서 여유있게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푸른 눈, 푸른 입술의 외계인은 이 컴퓨터의 미래기술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UFO 등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대한 최근의 관심과 맥이 닿아 있다.
현대전자가 드라큐라로 분장한 개그맨 김국진을 등장시켜 최근 내놓은 멀티캡 PC광고도 이 풍조가 반영된 광고로 볼 수 있다. 이 광고는 성능 위주의 컴퓨터 광고 본류를 벗어나 「악마주의」라는 세기말 현상을 소재로 한데다 유머성까지 살리고 있다. 이밖에도 해골을 등장시켜 「죽음」이라는 소재로 눈길을 잡아 끄는 내의 광고도 등장했다.
세태를 반영하는데 어느 곳보다 민감한 광고업계가 이런 소재를 이용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오히려 그런 풍조가 덜 나오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할 수 있다. 광고업계에서는 『네거티브 광고로 흐를 위험성 때문에 세기말의 소재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네거티브 광고는 폭력 뱀 등 소비자들에게 혐오감을 일으켜 주목도를 높이는 광고 수법인데 세기말 풍조를 적극적으로 광고에 사용하면 이런 쪽으로 흐르기 십상이라는 것. 이럴 경우 『광고의 공적인 책임을 저버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광고가 세기말 현상을 퍼뜨리거나 주도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은연중 이런 광고가 하나둘 눈에 띈다』고 말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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