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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만 가정의 달?/로버트 할리 국제변호사(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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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만 가정의 달?/로버트 할리 국제변호사(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7.05.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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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5일)과 어버이날(8일)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미국에는 어린이날은 없고, 5월 둘째 일요일과 6월 셋째 일요일이 각각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인데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큰 기념일은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이상하게 느끼는 것중 하나가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에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평소에 야외나 극장 등에 가보면 연인이나 친구끼리 온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날만 유독 가족나들이가 많다. 주말에도 조금만 여유를 갖는다면 얼마든지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그런 주말은 가족과 무관하게 생활하다가 특별한 날에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나의 유년시절중 가장 그리운 때는 아버지와 함께 보냈던 주말들이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매우 바쁘셨지만 9명의 자녀들과 함께 등산, 캠핑, 극장 등을 돌아다녔고 우리는 쉴새없이 떠들며 뛰어놀았다. 한국에서는 이젠 그런 대가족 나들이가 거의 없지만 미국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캠핑갔을 때의 일이다. 해질녘에 도착한 우리가 깊은 숲속에서 텐트를 치고 식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모두 들떠서 쉴새없이 웃고 떠들고 있는데 물을 길러갔던 동생 하나가 허겁지겁 돌아오더니 『커다란 검은 곰이 텐트 밖에 있다』고 말했다. 개구장이 동생이 장난치는 것으로 알고 살며시 밖을 내다보니 정말 그림으로만 보던 곰이 버티고 서 있었다. 가족 모두가 부둥켜 안고 떨자 아버지는 무서운 기색없이 『걱정말라』고 하시고는 총이 아닌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아버지가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는 순간 곰이 달려들었다. 아버지가 이리저리 피하며 곰을 따돌릴 때까지 우리는 가슴을 졸여야 했다. 캠핑을 마치고 돌아온 후 우리는 심심할 때마다 그때 일을 기억해내고 아버지의 놀라운 용기에 야릇한 웃음을 짓곤 했다.

이제 아버지는 시력이 약해져서 예전처럼 캠핑을 자주 가지도 못하신다. 나 또한 멀리 떨어져 있다보니 아버지날에 찾아뵙지도 못한다. 그렇지만 항상 여름휴가때면 부모님께 달려간다. 올해도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아들딸들과 손자손녀들이 어울려 이산저산을 다닐 계획이다. 한국에서 어버이날을 앞두고 보니 유난히 그날이 기다려진다.

나는 그때의 아버지처럼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가정의 달이라고 해서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도 좋지만 한국의 가장들도 미국처럼 주말이나 틈이 날때마다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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