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갈길 바로잡겠다” 언급 주목/“여야 공멸” 양해호소·유보 시각도김영삼 대통령은 지난 3일 청와대 비서관들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흐트러진 민심을 추스르고 나라의 갈길을 바로잡는데 청와대가 중심이 돼야 한다』며 『나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할 각오』라고 말했다. 야권은 물론 여권으로부터도 대선자금공개 압박을 받고 있는 김대통령이 어떤 심경을 갖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난국을 수습할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발언이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비서관은 『김대통령의 표정에서 사태전반을 상당히 정리했고 이른 시일내에 정국현안을 극복할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며 『이날 말씀의 흐름으로 미루어 대선자금공개 문제는 청와대가 주도하는 미래지향적 처리쪽으로 가닥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나라의 갈길을 바로 잡겠다」는 등의 표현에서 대선자금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으나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청와대는 지금까지 대강 세가지 방향에서 대선자금문제 처리방안을 검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첫번째는 김대통령이 시국에 관한 입장표명을 통해 대선자금의 성격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국민의 양해를 구한다는 것이다.
과거 고질적 정치관행에 따라 비정상적인 액수의 선거자금 사용이 불가피했음을 솔직히 반성한 뒤 이를 계기로 미래의 정치발전을 위해 혁신적인 정치구조 개선책을 제시한다는 방안이다.
김대통령은 대선자금 문제가 생기게 된 연유와 과정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정치권 전체가 공멸할 가능성이 있는 이 문제에 더 이상 집착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는 것이다. 이는 대선자금 세부내역 공개가 전혀 불가능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두번째는 법정비용을 초과하는 적절한 선에서 자금내역을 공개하는 대신 역시 정치관행의 잘못을 설명하고 여야 모두의 반성을 촉구한다는 계획이다.
세번째는 일체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넘어간다는 방안이다. 한 관계자는 『사실 야당이 아무리 공세를 펴도 선거때 돈의 출납이 워낙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뤄져 전체 액수를 도저히 밝힐 수 없는 형편』이라며 『당시 관련자들 중에도 직접 나서 내역을 정확하게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설프게 액수를 밝힐 경우 야권에 새로운 공격의 빌미만 제공해 줄 뿐더러 어차피 구구한 변명이 될바에야 침묵하는 편이 낫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이 가운데 현철씨 문제가 매듭지어지면 김대통령이 한보정국과 함께 대선자금에 대한 입장표명을 한다는 원칙만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아직 어떤 방식으로 입장을 밝힐 것이며 언급 수위는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등에 관한 본격적인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 야권과 신한국당 대선후보들의 발언 의도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사태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는 특히 여권 내부의 갈등이 대선자금문제 해결에 적지않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 한 고위관계자는 『당 대표가 고백해야 한다고 나서니 다른 대선후보들도 영향을 받는 것 같다』며 『야권의 일방적 정치논리에 휘말려 적전분열을 일으킨 형국』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이 김대중 국민회의총재의 선거자금을 폭로하는데서 보듯이 대선자금 문제는 정치권 공멸의 뇌관』이라며 『야권은 물론 여당도 자제하고 빨리 미래지향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손태규 기자>손태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