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T. S. 엘리어트는 노래하였다.「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그렇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온나라가 봉이 정선달의 한보와 대통령 아들을 위시한 요괴인간들의 거짓말들에 들끓고 있었다. 이제 끝났다. 양심적인 한 은행간부의 자살만을 남긴 채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청문회는 끝이 났다. 이긴 자도 진 자도 없이 모두가 상처입은 채 청문회도 끝이 났다. 이제 그만 하자. 이젠 정말 지겹고 이젠 정말 지쳤다. 눈 뜨면 정치에 잠들어서도 정치꿈이다.
이제 그만 하자.
잔인한 달 4월은 지나갔고 죽은 땅 속의 잠든 뿌리 이야기는 이제 그만 하자.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유례없이 정의의 편에 선 우리의 검찰이 모든 것을 드러내보이고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는 정의의 칼을 휘두를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죽음을 노래하지 말고 생명을 노래하자.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싸감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우는」 이 좋은 5월 신록의 계절. 모든 생명들은 사랑을 노래한다.
5월은 가정의 달. 가정은 생명과 사랑이 넘치는 우리의 보금자리.
지난 밤 나는 MBC에서 가정의 달을 맞아 특집으로 방송하는 「신생아 병동 25시」란 프로를 보았다.
한 시간동안 내내 내 눈가에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라. 우리들 모두가 정치판에 놀아나 죽일 놈 살릴 놈 하고 있는 동안에도 한곁에는 우리들의 아이들이 태어나고 있다. 정신적 미숙아들이, 정치를 하고 사업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쇠고기 한근 600g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들의 미숙아들이 태어나고 있다. 한 해에 70만명의 신생아가 태어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해마다 5,000명의 미숙아들이 태어난다는구나. 그 중에 살아남는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많은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어간다는구나. 하느님이 만들어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 귀중한 생명들이 눈을 떠 보지도 못하고 죽어간다는구나.
그뿐이냐. 이 일을 어찌 할 것인가. 60년대에는 10%에 불과하였던 임신중절이 70년대에는 40%에 육박하였고, 82년에는 50%를 넘어섰으며, 90년대에는 60%가 되었다는구나. 우리들의 아이들 세명 중에 두명은 태어나기도 전에 낙태수술에 의해서 갈갈이 찢겨서 죽어간다는구나. 그리하여 한해에 200만명의 신생아들이 죄의식 없는 살인과 폭력에 의해 죽어간다는구나. 아아,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썩은 정치야 언젠가는 물러간다.
그런 죽은 사람들의 죽은 돈 죽은 정치는 언젠가는 사라진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들의 생명이다. 우리들의 생명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렇게 죽어간다는구나. 서울 중앙병원의 신생아과장 피수영 박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미숙아를 위한 병상 수는 4,200개인데 현재의 병상 수는 단지 1,300개뿐. 태어나서 병원에 와 보지도 못하고 우리들의 아이들이 그대로 죽어간다. 우리들의 아이들이 이렇게 죽고, 저렇게 죽어간다는구나.
아우슈비츠의 유태인 학살을 우리는 증오한다. 아우슈비츠에서는 5년동안에 400만명의 유태인들이 학살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5년동안 1,000만의 신생아들이 미숙아로, 낙태수술에 의해서 학살되고 있지 않은가.
소리없는 아우성.
우리나라의 하늘에는 학살당한 아이들의 영혼들이 구천을 헤매면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울부짖고 있다. 그까짓 비자금이 무엇이고, 그까짓 정치가 무엇이냐.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게 되어 있고 칼을 든 사람은 칼로 망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 진정으로 우리가 이 세기말의 시대에 눈떠야 하는 것은 별을 노래하는 윤동주의 마음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들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지금이야말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슬퍼하고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노래하는 바로 그러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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