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산업을 조각조각 구획짓고 있는 「칸막이」들은 다분히 규제의 편의를 위해 세워진 것들이다. 한군데서 취급해도 될 비슷비슷한 업무지만 쪼개고 가로막아 놓아야 통제가 쉽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할부금융 리스 등 「조각금융」들을 단일 여신전문금융기관으로 통합한다는 재정경제원의 방침은 국내 금융사상 처음있는 「칸막이 철거」란 점에서 큰 의미를 둘만 하다.하지만 아직도 칸막이들은 도처에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제거해야 할 것들은 아마 금융정책의 산실인 재경원안에 있지않나 싶다.
여신전문금융기관으로 통합될 업무의 경우 재경원에서 리스 신기술금융은 산업자금과, 카드 할부금융은 중소금융과(할부금융은 얼마전까지 금융제도과)로 뚜렷한 이유없이 관할이 흩어져있다. 재경원 업무소관이 어떻게 조정될지 모르지만 지금같아선 한 금융기관을 여러갈래 방향에서 규제하고, 금융기관 입장에선 「여러명의 상전을 모셔야」하는 냉소적 추론도 가능하다.
재경원의 이런 칸막이 구조는 갑작스런 부처통합으로 편제가 즉흥적으로 이뤄진 탓도 있지만 근본적으론 관의 조직철학이 기능보다는 규제의 편의, 소비자보다는 공급자의 시각에 기울어있음을 뜻한다. 한 은행안에 있는 돈이라도 회계상 어느 장부에 등재됐느냐에 따라 한국은행과 재경원이 나눠 통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 금융개혁은 금융만의 개혁으론 성공할 수 없다. 개혁목표가 「관치」의 수식어를 떼내는 것이라면 「빅뱅」의 절반쯤은 금융당국을 대상으로해야 한다. 빽빽한 칸막이의 낡은 규제기구가 굳건히 남아있는데 금융산업의 판을 새로 짠들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규제를 없애려면 사람을 줄이고 조직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재경원에선 아직 그런 소식이 들리지 않는다. 금융개혁위원회의 개혁대상과제에서 재경원이 빠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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