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1주전부터 돈보따리 쇄도”/유세 중반까진 자금 달려 조직별 조달·은행융자 동원/공천걱정 위원장 적극나서/대세 기울자 ‘보험자금’ 몰려/막판 실탄은 개인이 꿀꺽/“문제삼을 분위기 아니었다”92년 대선자금문제가 정국의 최대현안으로 등장하면서 이와 관련된 뒷얘기들도 무성하다. 여권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당시 자금 상황, 조달방식, 선거후 뒤처리 등을 둘러싼 후일담이 줄을 잇고 있다. 이중에는 특히 김영삼 대통령 당선후 남은 대선자금의 처리문제를 놓고 벌어졌던 「치부」들도 있다. 또 노태우 당시 대통령측에서는 김대통령당선자측에 야당이 주장하는 「공적인 지원」 외에 사적으로도 「성의」를 표시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92년 YS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김대통령은 선거중반까지 자금이 달려 애를 먹었다고 한다. 중반까지 YS의 뚜렷한 승세가 나타나지 않아 가장 큰 자금줄인 재벌들이 좀체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금상황이 여의치 않자 김대통령진영에서는 각종 자금조달 아이디어가 백출했다. 대표적인 것이 「조직별 각자조달 원칙」과 은행융자 동원.
여기에서는 후보 본인도 예외가 아니어서 김대통령은 재력이 풍부한 민주계의 한 현역의원을 보증인으로 내세워 주택은행에서 수억원을 대출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여권인사는 『김대통령이 지방에 가면 유세에 앞서 현지 경제인들을 직접 만나곤 했다』고 말했다.
직접 조달원칙에 따라 나라사랑실천운동본부(나사본)를 이끌었던 서석재 의원과 민주산악회를 관장했던 최형우 의원, 나사본 청년조직을 맡았던 김현철씨도 직접 후원자들을 찾아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씨는 박태중씨에게 자금집행을 맡겼다는 것이다. 가장 곤혹스러웠던 것은 지구당위원장들. 중앙당의 지원이 풍족하지 않자 민정계출신 등 다음 공천이 걱정됐던 위원장들은 직접 돈을 마련, 선거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김대통령 부인 손명순 여사는 노 전대통령 부인 김옥숙씨로부터 「성의」를 전해받은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당시 김씨는 김대통령의 경남고 동기모임인 「삼수회」회원중 김대통령과 특히 가까운 한 인사의 부인을 청와대로 불러 「보따리」하나를 상도동에 전해주길 부탁했고 이것은 그대로 손여사에게 전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듣기로 거기에 돈이 담겨져 있었다고 한다』며 『하지만 그것을 손여사가 순순히 받았는지, 사용했다면 어디에 썼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처럼 어려운 상황은 선거 1주일여를 남기고 반전됐다. 대세가 YS쪽으로 기울자 각 계에서 YS캠프에 「보험」을 들기위해 달려왔던 것.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자금에 여유가 있게되자 「딴 맘」을 먹은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특히 대선직후 김현철씨와 민주계 한 중진사이에는 「대선자금잉여분 착복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현철씨측은 이 중진이 자신의 사조직 확장을 위해 사용하고 남은 대선자금을 비축해 놓았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이 중진은 『나는 김대통령에게 후원자들을 소개해 줬을 뿐 자금조성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명, 안기부가 경위파악에 나서 이 중진의 「무고함」이 밝혀지기도 했다.
영남권 출신 한 민주계 중진의원의 증언은 더욱 흥미롭다. 『선거가 끝난뒤 계산을 해보니 당이 내려보낸 자금중에서 내가 조달해 쓴 자금을 제하고 6,000만원이 남았었다. 그래서 이를 당시 모 당직자를 통해 중앙당에 반납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당직을 맡은 뒤 알아보니 지금은 원외인 그 당직자가 개인용도로 써버렸던 것으로 파악됐다』는 얘기다.
막판에 지급된 「실탄」중 상당수는 지구당위원장들의 개인호주머니에 들어갔을 것이라는게 여권의 일반적인 추측이다. 대선당시 YS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한 현역의원은 『선거 막바지에 중앙당에서 내려보낸 자금중 상당액이 집행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당시 이것을 문제삼을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밝혔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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