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대로 하세요. 실업이 죽음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박석태 전 제일은행 상무의 자살 다음날 만난 한 은행원이, 출근때 아내가 신신당부했다며 전해준 말이다. 그러면서 그 은행원은 퇴근후 요리학원에 등록하든지, 택시 운전면허증을 따든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위 「잘 나가고」 있어 『농담치고는 좀 지나치다』고 했더니 정색을 하며 되물었다. 『그동안 수 많은 큰 사건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온 나라가 시끄러웠지만 근본적인 개선이 이루어진 것은 거의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며 「경험의 법칙」을 내세웠다.
오랫동안 줄기차게 외쳐온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분위기는 사라져가고, 그 자리를 「어쩔 수 없다」는 패배의식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어른들을 닮아서 일까. 지하철을 타고 과천정부청사로 출근하는 사람들중 몇몇은 봄 가을에는 도중에 사당역에서 내려 버스를 이용한다. 서울대공원 등으로 소풍가는 학생들을 피하기 위해서다. 그들의 무예의 무질서를 도저히 참고 봐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생부터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한마디로 안하무인격이다. 지하철내에서 지나치게 떠들고, 뛰어다니고, 공연히 타고 내리기를 계속해 지하철 운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귀여운 장난꾸러기」라고 보기에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제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에 아침부터 우울해지고,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자연스럽게」가슴을 저미게 한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은 왔지만, 위와 아래 어디를 봐도 봄은 아직 온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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