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현철씨도 수천억 주물렀다” 주장/초반 절대적 역할… 주로 대기업 2세들 통해 “모금”/YS조달분중 상당액 관리 “사조직 자금총괄”설도김현철씨는 92년 대선자금의 조달과 운용에 과연 어느 정도 개입했을까.
이와 관련해 현재까지 드러난 구체적 단서는 그의 최측근인 박태중 (주)심우 대표의 재산이 대선직후 갑자기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막대한 선거자금을 조달, 운용하던 현철씨가 잉여자금을 박씨에게 맡겨 관리토록 했을 것이란 의혹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철씨는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의 대선후보가 된 92년 5월부터 조직과 선거전략 수립뿐 아니라 자금조달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게 그를 아는 인사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92년 10월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 이후 12월의 선거운동기간 초반까지 김대통령이 심한 자금난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때 현철씨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그의 자금원은 주로 고대출신 기업인모임인 「경영연구회」를 비롯한 고대, 경복고 인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영연구회의 경우 H그룹 C회장, K그룹 N회장, T그룹 Y사장, H그룹 K회장, T증권 Y부회장, B유업 K사장, K출판사 K사장 등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오너와 경영인 6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현철씨는 이들로부터 십시일반으로 수십억원의 자금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의 한 인사는 『대기업의 2세들이 많았지만 그들도 부친의 눈치를 봐야했기 때문에 한번에 큰 돈을 주지는 못했다. 보통 2억∼3억원, 많게는 10억원 정도를 건네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후 대선판세가 김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자금의 조달채널도 최형우 서석재 의원 등으로 다변화하면서 현철씨의 조달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됐다. 대신 조성된 자금의 배분과 관리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계의 한 인사는 『김대통령이 직접 조달한 자금중 당에 전달된 돈을 제외한 나머지는 김대통령의 개인금고 역할을 했던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과 현철씨에게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현철씨가 나라사랑 실천운동본부(나사본), 민주산악회 등 당외곽 조직의 대부분 선거자금을 관리·집행했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현철씨는 이 돈을 나사본의 총괄본부장이었던 서의원을 거치지 않고 총괄본부 사무국장인 박태중씨에게 바로 전달해 집행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나사본에는 현철씨가 이끌던 「민주사회연구소」인맥이 흡수된 상태였다. 이렇게 나사본에 들어간 돈은 주로 대규모 군중집회를 위한 청중동원용으로 쓰여졌다는 게 정설이다.
현철씨는 이와함께 동숭동팀(임팩트 코리아), 광화문팀(언론대책반), 청년사업단, 중앙조사연구소 등 사조직에도 일별, 주별로 수천만∼수억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사조직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선거가 임박하면 할수록 위에서 내려온 자금의 액수가 커졌다』고 전했다.
대선기간중 이런 식으로 현철씨가 집행한 자금총액은 수천억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게 야권의 주장이다. 하지만 정확한 금액은 현철씨 본인 외에는 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민주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자금조달 책임자들 사이에는 서로의 자금상황을 알려주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 게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철씨가 남은 대선자금을 자의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여지」이기도 하다.<유성식 기자>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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