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원리 상충·적용 형평성 등 문제/채권단 자율성 확보·한시운영돼야경기침체가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기업부도가 속출하여 지난 3월 부도율이 14년만에 0.24%에 이르고 있다. 기업의 연쇄적 부도는 경우에 따라 국가경제에는 커다란 충격을 줄 수 있고 금융기관의 부실화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부실기업에 대한 처리문제는 매우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이다.
금융권은 연쇄부도로인한 경제적 충격을 방지하기위해 「부도방지협약」을 마련하고 진로그룹 등 부실기업에 대한 처리를 공동으로 대처하려하고 있다. 그러나 협약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추진과정에서 투명성 미흡, 시장원리와의 상충문제, 신용질서 교란, 적용대상기업의 기준에 대한 정당성과 형평성 문제 등 우려되는 바도 적지않아 몇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부실징후기업의 정상화를 촉진시키고 부실채권의 효율적 정리를 위해서는 관련 금융기관들이 자율적 협의회를 구성하여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이번 협약과 협의회 구성은 정부주도로 출발하고 있어 금융자율화와 시장원리에 위배되고 있다. 협약이 한보철강 삼미특수강 등 대형 부실기업의 연쇄적 부도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나기위해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것이나 이러한 문제들은 관련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협의회를 구성한후 회생가능성을 엄격히 진단하고 그 결과에 따라 여신의 추가지원 또는 채권회수에 대한 조치를 취하면 되기 때문이다.
둘째, 경쟁력을 상실하여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기업은 하루빨리 시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바람직하나 만에 하나라도 부실기업으로 판정된 기업들이 이 협약에 의해 인위적으로 부도가 방지되고 퇴출이 제한된다면 국가경쟁력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 우려가 있다. 기업의 부도가 은행의 도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거나 국가 경제전체에 심각한 충격을 줄 수 있는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실기업의 처리문제는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기업의 신용과 경쟁력 정도에 따라 금리수준과 대출규모가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부실기업에 대해서는 대출중단과 함께 시장으로부터 퇴출을 시켜줌으로써 정상적인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정상적인 기업들이 사용해야 할 자금을 부실기업들이 사용한다면 부실기업이 회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금융기관의 집단부실화가 우려되고 이러한 비정상적 자금흐름이 결국 국가 전체 경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고금리의 한 원인이 된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셋째, 부도방지 협약으로 인해 일부 은행에 지급결재거부, 허위사취계 제출 등 신용질서를 교란시키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금융시장에서 자금악화설에 의해 일부기업들은 금융기관의 경쟁적 자금회수에 의해 이들 기업들의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넷째, 이번 협약의 적용대상기업의 기준에 있어서도 원칙적으로 2,500억원이상의 여신을 쓰고 있는 기업으로 제한하고 있어 형평성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다섯째는 부도위기에 직면한 기업들이 동협약에 의해 채권은행의 자금지원을 기대하여 자구노력이나 경영합리화를 추진하기보다 여신을 오히려 늘리는 소위 「도덕적 해이」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기타 채권자의 재산권과 투자자 보호문제, 그리고 기업중의 경영권에 대한 입장 등에 대해서는 좀 더 세심한 주의와 배려가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들을 안고 출발한 협약이지만 운영과정에서 자율성을 갖고 시장원리에 충실하다면 현재 우리 경제가 안고있는 구조조정을 촉진시키고 자금흐름의 정상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경기침체로 인해 많은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 기회에 부실기업들이 퇴출되어 우리기업의 체질개선과 구조조정의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끝으로 부도방지협의회는 한시적으로 유지되어야하고 항구적으로 제도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않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부실기업문제가 또다시 대두된다면 채권은행이 관련금융기관을 소집하여 자율적 협의에 의해 처리하면 되기 때문이다.<한국경제연구원 원장>한국경제연구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