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도 컸고 실망도 컸던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가 1일 폐막됐다. 당초의 일정은 2일 하루 정태수씨를 다시 출석시켜 신문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정씨의 석연찮은 실어증 증세로 이를 취소했다고 한다.88년의 5공·광주청문회에 이어 헌정사상 두번째인 이번 청문회를 지켜본 사람들은 「과연 이런 청문회가 필요한가」라는 의문과 함께 청문회의 실효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리라 본다. 증인들의 후안무치한 발뺌증언과 여야의 당리당략적 접근, 그리고 특위위원들의 준비부족 등의 사태는 원천적으로 실체적 진실의 파악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다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청문회가 나름대로 기여를 한점도 적지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간 이 청문회를 통해 이제까지 항간의 소문으로만 접했던 문민정부, 개혁정부의 새로운 비리구조와 부패의 윤곽을 뚜렷이 알게 됐고 그런 인식을 전 국민이 광범하게 공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 점 TV생중계에 힘입은바 크다. 앞으로 검찰이 이 사건의 사법적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이 사건에 관한한 모두가 배심원이었던 국민들은 이미 그 마음속에 유무죄의 평결을 마쳤다. 이 점 검찰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특위가 활동보고서를 통해 청문회성과를 자평하겠지만 객관적인 관람자의 입장에서 볼 때 청문회제도의 개혁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국민적 과제로 대두되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한보비리의 「몸통」의혹을 받고 있던 김현철씨에 대한 증인신문은 김씨의 한결같은 부인발언에다 여당의원들의 「해명기회주기」로 인해 작은 단서 하나 찾지 못하고 국민적 무력감만 더하게 했다.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김씨를 비롯한 핵심증인들의 거짓증언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들의 위증혐의에 대한 특위의 고발여부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여기에까지 여야가 당리당략의 이전투구를 할 때 정치권은 국민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허위증언이라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검증이 될 때 특위는 마땅히 이를 사법당국에 고발조치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미 몇차례 지적한바 있지만 차제에 국회 청문회제도를 개선하는데 모두가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치권 스스로도 개선에 나섰지만 경실련 등 민간단체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선안에는 눈여겨 볼 대목이 많다. 예컨대 전문지식이 부족한 의원들을 보좌할 수 있도록 회계사 등 전문가들을 조사위원으로 위촉하는 미국식 「예비조사제」의 도입도 그중 하나다. 또 증인이 결정적 증언을 했을 때 형을 감면해 주는 「증언조건부 형면제 및 감경」제도의 도입도 검토해 볼 만하다. 같은 맥락에서 위증에 대한 처벌을 대폭강화하는 방안도 있다. 상반된 증인간의 대질신문을 강제화하는 것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주요한 개선항목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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