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태 전 제일은행 상무가 자살했다. 한보사태의 첫 희생자다. 일본에선 다나카(전중각영) 전 수상의 록히드사건 등 부정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윗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하는 경우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주 드문 일이고, 박씨는 경우도 다르다.흔히 겁쟁이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인간에게 한번 밖에 없는 생과 사를 수없이 반복한다고 한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막상 이를 실행하려면 용기가 없어 주저앉고 만다. 이들은 이같은 과정을 반복하면서 방황하다가 사회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박씨는 유서에 「아빠는 약했지만 너희는 굳세게 살아다오」하고 자신을 약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한평생 살면서 가장 큰 결단이 필요한 죽음을 결행한 사람이 약한 사람일 수는 없다. 죽음을 결행한 용기라면 살아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 터인데 안타깝다.
마틴 루터는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인생의 완성이다」고 죽음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것은 자연사의 경우다. 박씨의 자살은 인생의 완성이 아니라 종말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성실했던 은행원이 이같은 죽음으로 인생의 막을 내린 것은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인생은 한번 죽으면 신문기사처럼 교정을 볼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살아가는 과정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청문회의 양심적인 증인이었던 박씨는 살아서 한보사태의 진실규명에 더 보탬이 될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 그의 자살로 한보사태의 진실이 덮이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직도 정체를 밝히지 않고 있는 한보사태의 「몸통」과 청문회에서 「기억이 없다」 「모른다」 등의 오리발식 답변을 연발한 증인들은 죄없는 박씨의 자살에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증인들은 한보사태의 진실규명에 협조하는 것이 자살로 인생의 막을 내린 박씨의 인생을 그나마 헛되지 않게 완성시켜 주는 길이다.<논설위원실에서>논설위원실에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