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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무엇을 증언하는가(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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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무엇을 증언하는가(사설)

입력
1997.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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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 박석태 전 상무는 비리와 부도덕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선량한 개인이 양심대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자살을 통해 증언했다. 한보청문회에 나와 청와대의 특혜대출 개입사실을 증언했던 박씨는 자살을 택함으로써 죄책감과 중압감으로부터 그 자신을 해방시켰다.그는 유서에서 1남4녀 자녀들에게 『아빠는 약했지만 너희는 굳세게 살아다오』라고 당부했다. 검찰수사과정에서는 한보대출의 은행장책임을 말하면서도 이를 제지할 수 없었던 무력함과 자신의 굳세지 못했음을 자주 토로했다고 한다. 신용과 서비스가 본령인 은행원으로서 박씨는 양심과 명예를 훼손당한채 비도덕적 의리구조의 사슬에 얽혀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나날을 보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억울함, 죄책감과 수치심, 은행상사와 동료들에 대한 미안감 등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으로 보인다. 30여년간 고지식하게 일만 해온 한 은행원의 가정은 나라 전체를 뒤흔드는 한보사건으로 인해 송두리째 파괴되고 말았다. 그의 안타까운 죽음에 깊은 애도와 연민을 보낸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씨의 괴로움에 동정과 연민을 보내면서도 자살을 택한 그 용기를 한보사건의 진상규명에 돌렸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끝내 떨칠 수 없다. 자살은 어느 경우이든 극단적인 대사회 공격행위이다. 자살을 통해 박씨는 우리 사회의 비리구조를 마지막으로 통렬하게 공격했다. 박씨의 자살은 이 부도덕한 사회에서 양심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자살을 미화할 생각은 없지만 한보사건의 장본인들이 박씨의 10분의 1정도라도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가도 묻고 싶다.

이제 그의 자살이 세간의 의혹처럼 청문회증언에 대한 입막음이나 외압의 결과가 아닌지 명확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생전에 차마 밝히지 못했던 한보의혹의 실체가 그의 죽음으로 인해 미궁에 빠지는 일도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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