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 18년’ 퇴진 확실시하루 앞으로 다가온 영국 총선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이번 총선이 향후 영국의 헌정체제 및 유럽통합의 향배에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번 총선은 영국의 전통적인 보수·노동 양당체제의 생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관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볼 때 노동당은 79년이래 4차례의 총선에서 내리 승리해 18년간 정권을 장악해온 보수당을 물리치고 압승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보수당의 장기집권을 저지했다는 의미 외에도 영국의 정치구도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40대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수가 총리가 된다면 영국 정치의 세대교체를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게될 것이다.
이번 총선은 또 21세기 영국 헌정체제의 변혁을 배태하는 씨앗이 될지도 모른다. 노동당이 공약으로 내세워 선거 캠페인중 주요 쟁점화한 「헌정개혁」은 장기적으로는 영국의 지도를 바꾸게 될 수도 있는 엄청난 내용이다.
스코틀랜드와 웨일스지방에 대해서도 1단계로 북아일랜드 수준의 자치권을 인정해 조세권을 가진 독립의회를 창설토록 하는 방안을 국민 의사에 맡기겠다는 것이 노동당의 확고한 공약이다. 노동당은 기본적으로 이들 두지역이 「영연방」아래서 독립해도 무방하다는 방임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며 제2야당인 자유민주당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또한 노동당은 세습귀족들의 상원내 투표권 박탈을 헌정개혁과 관련된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 마당이어서 이번에 정권이 바뀌게 될 경우 군주제의 폐지문제까지 본격 거론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입헌군주제라는 영국의 수백년 된 정체와 「통합된 영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이 총체적으로 재검토되는 단초가 될 수 있는 것이 이번 선거인 것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유럽통합의 향후 진로에도 큰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에 유럽국가들이 특히 예의주시하고 있다. 단일통화 등 유럽연합(EU)의 통합 가속화에 회의적이고 소극적 자세를 견지해 온 것이 보수당정권의 기본 노선인데 반해 노동당은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입장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의 승자가 보수당이냐 노동당이냐에 따라 유럽통합의 변속기어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런던=송태권 특파원>런던=송태권>
◎반전 노리는 메이저·승리앞 초조 블레어/“선거는 뚜껑 열어봐야”
존 메이저(54·보수당수) 총리는 막판 여론조사에서까지 보수당이 열세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와 개운치 않지만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92년 총선때도 보수당이 불리한 것으로 조사됐으나 막상 행운의 여신이 자신을 보고 웃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도 「기적」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90년 최연소로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될 때 숱한 도전과 시련을 물리쳤다. 2년전에도 당수직에서 자진사퇴, 경선을 치르는 도박을 걸어 승리했다. 7년간의 집권중 자신의 통치에 대과가 없었고 특히 국가경제 궤도만큼은 제대로 잡아놓았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평가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서커스단 공중곡예사의 아들로 태어나 고졸중퇴가 학력의 전부지만 일찍이 25세때 정계에 데뷔해 신화를 창조한 메이저. 그는 이번 고비만 넘기면 현대 영국정치사에서 최장수 총리 기록에 도전할 수 있게 된다.
18년 보수당 정권을 탈환해야 하는 토니 블레어(44) 노동당수는 승리를 코앞에 두고 오히려 초조한 기색이다. 여론 조사결과를 보면 노동당의 승리가 확실하지만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투표행태여서 하루라도 빨리 선거를 치렀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는 이번 선거가 자신이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새 노동당」으로 영국을 새롭게 창조하겠다는 신념을 불태우고 있다. 95년 정치생명을 무릅쓰면서 당헌을 개정, 생산수단의 공공소유 노선을 포기하고 당에 대한 노조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배제시킨 것도 이번 총선에 대비한 것이었다. 법률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옥스퍼드대학을 나오고 변호사로 활동하다 30세에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 엘리트 코스만 걸어와 메이저 총리와 대조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메이저 총리의 최연소 총리기록을 깨고야 말겠다는 「신화의 대결」에도 도전하고 있다.<런던=송태권 특파원>런던=송태권>
◎보수노동 정강정책 비교/유럽통합 빼곤 ‘대처리즘’ 한목소리
노동당의 신보수화 경향으로 정강정책에서 노동·보수 양당의 전통적 차이는 과거에 비해 확연히 줄어들었다. 「대처리즘」을 등에 업은 보수당은 자유무역 확대, 소득세율 인하, 유럽통합 반대 등 기존 골격을 유지한 반면 노동당은 노조설립과 노동자의 권리보장, 산업자본의 국유화문제 등에서 기존 입장을 상당히 완화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집권후에도 대처리즘을 그대로 계승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보수당과 정책상 큰 변화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양당간의 차별성은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핵심으로 한 외교정책과 정치개혁, 조세제도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보수당은 유럽통합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유럽통화동맹(EMU) 가입도 여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반면 노동당은 신중한 입장이긴 하나 EU 사회조항 참여를 약속했고 단일통화참여 문제도 상당히 적극적이다. 집권하면 EU문제에 대한 행보가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치개혁에서는 지방분권의 확대와 귀족세습제 반대,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장하는 노동당에 대해 보수당은 「불가」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고, 조세문제에서도 보수당은 소득세의 기본세율을 낮추고 노조파업에 따른 배상청구권을 인정하는 반면 노동당은 소득세의 기본세율과 최고세율 유지, 최저임금제 도입 등 다소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군축, 미국 및 나토와의 관계, 무역 등에서는 노동당이 보수당에 비해 철저히 「국제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황유석 기자>황유석>
◎치맛바람이냐 현모양처냐/안방주인 누가 될까
「영국판 힐러리」냐, 「효녀 살림꾼」이냐. 이번 총선에서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의 안방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도 큰 관심거리다.
현재 승리가 확실시되는 토니 블레어 노동당수의 부인 셰리 부스(43)는 여러 면에서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힐러리를 쏙 빼닮았다. 결혼후에도 자신의 성을 고집하는 등 매사에 자신만만한 그는 최근 영국변호사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법조인」에 뽑힐 만큼 잘 나가는 변호사다. 연봉(3억원)도 남편 수입의 4배를 넘는다. 남편보다 먼저 정계에 입문한데다 83년 하원의원에 도전했던 정치경력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내조를 펼쳐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반면 존 메이저 총리의 부인 노마(55)는 소리없이 남편을 보필하는 현모양처형. 온화한 성품에 알뜰함이 몸에 밴 살림꾼이다. 수줍음 많은 성격탓에 선거운동에서 다소 불리했지만, 비슷한 처지의 여성층 공략에 한몫 했다는 평이다. 노마는 최근 암으로 투병중인 70대 모친을 극진히 모셔온 효성이 알려져 동정을 얻고 있다. 한편 일부에서는 셰리의 승리를 전제로, 다우닝가에도 백악관 못지않게 「치맛바람」이 거세게일 것으로 점치고 있다.<이희정 기자>이희정>
◎글렌다 잭슨을 보면 노동당이 보인다/중도노선 당이미지와 꼭 닮아/아카데미상 경력… 재선 도전
재선에 도전하는 영화배우 출신의 글렌다 잭슨(61·여)이 토니 블레어 당수와 함께 새로운 노동당을 대변하는 이미지 메이커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부드러운 노선으로 중산층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잭슨의 정치기반이 중도를 지향하는 노동당의 색깔과 기막히게 어울리기 때문.
이같은 성가는 특히 그의 인생역정을 고려할 때 더욱 의미있다. 벽돌공 아버지와 술집 웨이트리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좌파적일 수 밖에 없는 「출신성분」의 굴레를 벗고 온건노선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그의 지역구 또한 노동당의 변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92년 첫출마 때부터 지켜온 런던 북서부 햄스테드 선거구는 런던의 대표적 부촌. 부유층이 일반적으로 보수당 지지세력이었다는 전통을 이미 깬 셈이다. 69, 74년 두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대중적 인기는 블레어 당수의 매력과 어울려 남녀 유권자의 고른 지지를 얻는데도 한몫을 할 전망이다.
요란한 유세보다는 공약 팸플릿이 담긴 가방을 메고 맨투맨식 운동을 벌여온 그의 최측근 참모는 장남 하지스 대니얼(28)로 알려졌다. 잭슨은 이번에 당선될 경우 노동당 정부의 교통장관으로 유력시되고 있다.<배연해 기자>배연해>
◎군소정당들 “우리도 뛴다”/20여 당 참여 독립·EU잔류 등 쟁점화
이번 총선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 노선을 계승한 제3당 자유민주당(LDP)을 비롯, 20여개의 군소정당이 참여해 열전을 벌인다.
스코틀랜드민족당(SNP) 웨일스민족당(WNP) 등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지역정당들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특색. 북아일랜드에서는 얼스터통일당(UUP) 민주통일당(DUP) 등 독립에 반대하는 친영 정당과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정치세력인 신페인당 사민노동당(SDLP) 등 가톨릭교도의 지지하에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정당들이 양립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잔류여부를 재고하자는 정당들도 등장했다. 억만장자 제임스 골드스미스가 지원하는 국민투표당(RP)은 EU 잔류문제를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지율은 1%에 불과하지만 보수당과 노동당이 이 입장을 수용,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독립당(IP)은 EU 탈퇴를 주장하고 있지만 RP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외에도 「환경」 「사회정의」를 정강으로 내세운 녹색당(GP) 등 원외정당들이 원내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소선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현 제도하에서 군소정당들의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최서용 기자>최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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