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부터 22일째 지리하게 계속되고 있는 국회 한보청문회는 취지와는 다른 역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청문회는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증인으로 불러 진실을 밝혀 보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회가 국정의 중심축에 있다는 것을 대내외에 과시하자는 목적도 있다.그러나 한보청문회는 진상규명은 커녕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켰고 국회의 권능을 과시하기 보다는 국회의 모습을 희화화 했다. 증인이 모른다고 하면 그만이고 의원들은 밤잠을 안자고 준비했다고 하지만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청문회를 무엇때문에 하는지 모른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함께 토론문화가 일천하고 거짓말을 해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청문회 제도가 바람직한 것이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때늦은 감마저 있다.
88년 5공청문회와 광주청문회처럼 스타탄생을 기대했던 의원들은 청문회에 나와 본전도 못한채 이미지손상만 입었다는 푸념을 하고 있다. 청문회에 나온 의원들이 다음선거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TV생중계로 비쳐지는 한보특위의 무기력한 모습은 국회의 위상을 저하시키고 국민들의 정치권에 대한 냉소를 한층 더 부추기고 있다. 국회 스스로가 자충수를 둔 셈이다.
청문회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관심 역시 시들하다. TV시청률도 김현철씨와 박경식씨 때를 빼면 일반시청률 수준이다.
온나라를 들끓게 했던 「청문회정국」이 형성됐던 88년과는 아주 다르다. 88년에는 전직대통령이 백담사에 유배를 가야 했을 만큼 청문회의 반향이 엄청났다.
정치권이 한보청문회를 열기로 했을 때는 88년도 상황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딴판이다. 정치권은 청문회의 미망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청문회는 더 이상 국회가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청문회는 경우에 따라 안하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한보청문회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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