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대출 장본인 낙인에 “중압감”/주위에 속내 안비친 「무거운 입」/딸들에게 “너희는 굳게 살아라”30여년을 일밖에 몰랐던 한 성실한 은행원을 죽음까지 몰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죽음으로써 이 사회에다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28일 숨진채 발견된 박석태(59) 전 제일은행 상무는 한보 특혜대출비리사건이 터진 뒤 그의 말대로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나날을 보냈다. 「변변한 배경도 없이 은행임원으로 입신한 입지전적인 인물」로서 가졌던 평생의 긍지는 한순간에 「비리의 주모자」로 전락하면서 철저하게 짓밟혀 버렸다.
박씨는 지난달 7일 주주총회에서 퇴임하고 은행측에서 제안했던 고문이나 계열사 자리도 세간의 여론을 의식한 일부의 반대로 무산됐을 때부터 극도로 사람들을 피해 은둔생활을 해왔다. 더구나 지난 17일 국회 한보특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돌아온 뒤부터는 식사는 커녕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 때부터 주변사람들은 박씨로부터 『차라리 죽는게 마음편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박씨의 체중은 최근 한달 사이에 10㎏이상이나 줄었다.
부인 김주영(47)씨와 딸들은 「혹시나」하는 생각에 한시도 박씨 곁을 떠나지 못한채 불안해했다. 며칠전에는 혼자 술에 만취해 돌아온 박씨가 약을 마시는 것을 본 가족들이 기겁을 해 앰뷸런스를 부르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나중에 숙취약으로 판명된 후에야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박씨의 비극을 전해들은 은행 홍보부의 고교후배 나병록(47) 차장은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남다른 성실함과 신중한 인품으로 부하직원에게 신망이 높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짧은 유서 대부분을 은행임직원과 업무상 관계자들을 일일이 들어가며 『죄송하다』는 말로 채웠다. 그러나 정작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빠는 약했지만 너희는 굳게 살아라』는 자식에게 한 당부가 아니었을까. 그것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게 만든 우리사회의 비리구조를 향해 그가 던지는 마지막 항변처럼 들렸다. 부인 김씨는 『얼마전 남편이 「최선을 다해 살려 했는데 정말 억울하다」고 통분해 했다』며 오열했다.<이동국 기자>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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