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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종은 동해에 수장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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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종은 동해에 수장되지 않았다”

입력
1997.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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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다해 12세기에 재주조/과기원 이병호 교수 삼국유사 근거 주장8세기 통일신라시대에 주조된 세계 최대 범종인 경주 황룡사종(무게 40.6톤)은 고려 중기 몽골군이 약탈하다 동해에 빠뜨린 것이 아니라 수명이 다해 12세기에 작은 종으로 새롭게 주조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병호(음향학) 명예교수는 26일 일연의 삼국유사 기록을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어딘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온 황룡사종은 이미 12세기에 사라진 것. 그러나 경주시는 올들어 해군의 도움을 받아 「황룡사종이 문무대왕 수중릉 근처에 수장되어 있다」는 구전을 근거로 탐사에 나섰다. 황룡사종은 754년 신라 35대 경덕왕 13년에 조성됐는데 황룡사는 고려시대 몽골군의 방화로 불타버렸다.

이 교수는 『일연의 삼국유사 권3 「황룡사종·분황사약사·봉덕사종」조에 「…시주 효정이왕 삼모부인, 장인 이상택하전. 숙종조 중성신종 장육척팔촌…」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는 효종이왕의 삼모부인이 시주를 해 이상이라는 양반집 하인이 고려 숙종(1095∼1105년 재위)때 황룡사종을 높이 6척8촌(2.07m)의 신종으로 개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숙종 2년에 왕의 친동생인 대각국사 의천이 화폐제도의 장단점을 논하는 사표를 제출하고 숙종 6년에는 은병이라는 화폐가 사용됐으며 이듬해 해동통보를 주조했다』며 『새 화폐의 발행으로 늘어난 쇠붙이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황룡사종을 녹여 작은 종으로 개조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황룡사종이 금이 가는 등 수명을 다해 개주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몽골군이 동해에 빠뜨린 것으로 전해진 황룡사종은 경덕왕 때 주조된 원래의 황룡사종이 아니라 고려 숙종 때의 6.4톤짜리 신종이라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70년대말 80년대초 황룡사지 발굴 당시 종이 지하 깊이 묻혔을 것으로 보고 발굴에 나섰으나 종을 찾는데 실패했다.

김동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같은 주장에 대해 『삼국유사의 기록은 확실히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며 『따라서 황룡사종은 12세기에 재주조됐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서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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