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희… 이수경… 구경숙… 김순례…/‘미술의 원천은 손’ 여성의 손놀림을 통해 무겁고 진지한듯한 남성적 작품에 정면승부를 건다손으로 찢고, 바늘로 꿰매고, 풀로 붙이는 작업.
적어도 최근 몇년간 우리 미술현실에서 작가들의 「수공업적 작업」은 그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맥주병 수백개 위에 배 한척만 척 올려 놓으면 설치작품이 되고, 멀티 슬라이드로 이미지를 비추어내면 뉴미디어 아트로 인식됐다. 전문가에겐 의미있는 작업이었으나 대중에겐 고통이자, 배반이었다. 그들에게 미술이란 좀 더 장인적인 「그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젊은 여성작가들은 조금은 경시되는 「전통적인 여자의 일」인 꿰매기, 박음질, 붙이기 등의 손작업을 통해 새로운 조형의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은밀히 진행되는 「페미니즘」의 새로운 전술일 지도 모른다.
『집에 가서 바느질이나 하라고. 그래 나는 바느질을 한다. 이 바느질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아느냐』는 식의 작업들. 미술의 원천적 행위인 손의 놀림, 수작을 통해 여성작가들은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무겁고 진지하고, 장르에 충실한 남성적 작업에 대해 여성적 손작업으로 정면 승부를 걸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화랑가에선 한땀 한땀 손으로 꿰매고, 붙여 만들어 수고스런 노동의 흔적이 역력한 작품들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신경희전」(2월17∼27일 박여숙화랑), 「이수경전」(3월14∼23일 금호미술관), 「김윤경전」(3월19∼28일 덕원미술관), 「이혜경전」(3월26일∼4월1일 나무화랑), 「옷과 자의식 사이―구경숙 안규철 이윰 홍현숙전」(3월11일―4월10일 스페이스 사디)에 이어 최근 「김순례전」(5월4일까지 금호미술관)까지 이어진다.
이들은 대개 대학에서 서양화나 조소를 전공한 이들로 천이나 비닐, 한지 등을 이용, 꿰매고 붙이는 등의 작업을 통해 「옷」 혹은 그와 유사한 형태의 작품들로 결론을 맺고 있다. 재미있는 공통점들이다.
그러나 이런 공통점들에도 불구, 작가들이 꿰매고 붙이는 등의 작업을 하는 데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서울대와 그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한 신경희씨가 지난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은 며칠 밤을 세워 직접 꿰매 만든 누비 드레스와 손수 제본한 책들. 전문 작업소에 맞기면 몇시간이면 반드르하게 해낼 일들을 신씨는 서툰 솜씨로 직접 한다. 왜. 신씨에게 꿰매고 붙이는 일련의 작업은 완성된 작품을 목표로 하지 않고도 바로 자체가 자기 아이덴티티 확인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서울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이수경씨는 최근 「가내 양장점」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인형, 유리잔, 헌옷과 더불어 비닐 망사안에 꼬마전구를 줄줄이 꿰맨 드레스를 선보였다. 헌옷을 잔뜩 진열해두고, 여기에 자신이 꿰맨 작업들을 슬쩍 끼어놓음으로써 이씨는 기성상품과 작품의 묘한 경계 허물기를 즐기는 듯 보였다.
우레탄이나 비닐에 구멍을 뚫고, 여기에 실을 꿰어 옷을 만드는 김윤경씨의 작업은 몇벌의 옷이 마치 메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도록 어렵게 연결돼 있다. 관습의 상징인 옷의 모양과 기능성을 파괴함으로써 새롭게 얻어지는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는 것이 작가의 의도이다. 수공업적 작업 태도가 엿보이지만 자신은 방식보다는 작품 자체에 관심을 쏟고 있다.
천이나 비닐 등 전통적 소재를 벗어나 파격적인 소재로 정면 승부하는 작가들도 있다. 구경숙씨의 경우 김과 한지, 투망을 켜켜이 붙여 독특한 물성을 확보하고 여기에 곰팡이도 자연스럽게 피게 한 다음 다시 꿰매고 붙이기를 더해 작품을 만들어낸다. 지난 94년부터 마치 묘지에서 방금 꺼낸 옷이나 신발같은 부장품과 남근 이미지 입체물 작업을 선보여온 구씨는 찬거리인 「김」이라는 소재와 여성의 수작업인 「꿰매기」를 통해 『시간이 흘러도 여성이 해온 일의 본질적 가치와 사회적 의미는 변함이 없다. 봐라. 적어도 역사의 반은 여성이 일군 것이다』는 여성주의적 진실을 발언하고 있다.
최근 독일서 귀국한 김순례씨는 반투명성을 가진 한지와 비닐, 실 등을 이용해 마치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놀이처럼 여성의 속옷이나 성기, 인간의 내장, 토르소, 혹은 의상을 내놓고 있다. 「부끄러운」 신체의 일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대담한 성논의를 유도하려는 페미니즘적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들이지만 한땀한땀 꿰맨 흔적에서 대중은 따뜻함을 느낀다.
동판을 두들겨 만든 이윰의 「살아있는 조각」, 안필연의 주술적 의상과 아크릴 가위들, 이 불의 구슬 왕관들 역시 같은 맥락에서 수공적 노고와 그만큼의 사회적 발언권을 획득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엇갈린 반응
○‘신선한 손맛’ 매력적
반응 1. 미술평론가 박영택씨. 『이들의 작업은 여성적 감수성과 노동의 질과 맛을 부각시키는 것들이다. 테크놀로지, 인공적 오브제에 식상한 일반인들은 바로 그들의 신선한 손맛에 매력을 느낀다. 이들 작업은 추상적, 순수조형적 측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섬유작가들의 천작업과 확연히 구분된다』
○대중문화 접근 아닌가
반응 2. 미술평론가 강성원씨. 『지금 미술계는 자체의 문화이론을 생산해내지 못한 채 거꾸로 대중문화이론을 수혈받고 있다. 여성작가들이 옷을 매개로 한 작업을 선보이는 것은 요즘 문화잡지들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패션에 대한 관심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옷을 매개로 하되, 그 본질에 천착할 수 있는 작가를 구분해 보아야 한다』
평가를 내리기는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 일련의 작품들은 필요 때문에, 혹은 뭔가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던 인간의 시원적 미술행위, 땀흘려 만드는 노동과 맥이 닿는 성실한 미술 작업과 맥이 통한다. 적어도 설치미술에 대한 반발 만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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