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리 어때요?섹시하죠?/‘최상의 소리’ 찾기 연주자엔지니어 끝없는 토론/60분 음반에 12시간 소요 “완성까진 아직도 먼길”『소리 어때요?』
『좀 문제가 있는데요. 거의 모노성이죠』
『나는 그게 좋은데. 마이크 하나로 녹음하면 어때요?』
『그럼 판을 못내죠. 사서 듣는 사람은 짜증나니까』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임동창씨의 음반녹음이 한창인 24일 하오 5시 서울레코딩스튜디오의 A 스튜디오 조정실. 7월에 삼성뮤직에서 나올 임씨의 음반 두장중 연극·무용음악집 「언덕에서」를 녹음하는 날이다. 조작단추가 잔뜩 달린 거대한 믹싱콘솔(각 마이크가 잡아낸 소리를 합치고 조절하는 녹음장비) 앞에서 임씨와 레코딩 엔지니어, 음반사 프로듀서가 줄담배를 피워가며 의논 중이다. 피아노의 부드럽고 예쁜 소리가 싫으니 잔향을 넣지말고 거칠더라도 생소리를 잡아달라는 임씨와, 클래식녹음의 전통적 음향을 원하는 엔지니어 사이의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톤디자인(음향설계)을 놓고 벌써 수시간째 회의를 거듭하고 있다. 어떤 소리를 원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녹음에 들어갈 수 없다. 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면서 음반소비자의 귀를 만족시키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연주와 녹음된 소리는 차이가 나고 같은 소리라도 사람마다 달리 듣기 때문이다.
하오 2시부터 마이크 설치작업에 들어가 녹음된 소리를 들어보고 마이크 설치방식과 종류를 달리 해 다시 녹음해서 들어보고 하기를 여러차례. 마이크 종류, 위치, 각도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결국 두 가지 방법으로 녹음한 뒤 하나를 택하기로 한다. 마침내 결정이 난 게 저녁 7시30분. 다섯시간 반 만에 톤디자인이 끝나서 진짜 녹음에 들어갔다. 이 지루한 「소리 그리기」 과정에서 기인으로 알려진 임씨는 간간이 「대지의 항구」 같은 철지난 유행가를 불러제껴 스태프를 웃겼다.
조정실 안의 엔지니어가 『준비 됐습니까. 들어갑니다』라고 신호를 주자 밖의 임씨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주를 시작했다. 얼마 안가 임씨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시계 소리가 들려요. 째깍째깍』 왠 난데없는 시계 소리인가. 스태프들이 『어?』하고 후닥닥 밖으로 나가 시계를 찾기 시작했다. 과연 벽시계 하나가 바닥에 놓여 있어 얼른 치우고 녹음을 재개했다. 한참 있다가 임씨가 또 일어섰다. 이번엔 피아노가 문제. 음 하나가 안맞아서 다시 조율했다. 이런 자잘한 사고없이 녹음이 끝나면 편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밤 10시에야 약 60분짜리 음반 「언덕에서」의 녹음이 끝났다. 아침 10시부터 녹음준비에 들어갔으니까 꼬박 12시간이 걸린 것이다. 강행군이 따로 없다. 삼성뮤직의 프로듀서는 『그래도 이만하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이라며 웃었다.
녹음이 끝났다고 바로 음반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나흘, 길면 서너달 편집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각 마이크가 녹음한 소리의 균형을 맞추는 「믹싱」, 수록곡을 배열하고 잡음 없애고 발매할 음반의 원판을 만드는 「매스터링」을 거쳐야 한다. 음반의 옷인 재킷디자인까지 다 이뤄지면 비로소 생산에 들어간다. 「언덕에서」의 경우 편집과정에서 잔향을 좀 넣기로 했다. 「건조한 소리」를 원했던 임씨가 녹음된 걸 들어보더니 「아무래도 소리가 너무 딱딱하다」며 주문을 했다.
그러나 25일 녹음한 전래동요 피아노곡집 「달아달아」에서는 「진짜 딱딱한」 피아노를 썼다. 피아노 해머의 나무막대를 감싸고 있는 양털을 경화제로 굳혀 딱딱하게 만든 것. 솜방망이를 홍두깨로 만든 셈이다. 클래식피아노 소리가 「멍청해서」 싫다며 굳이 경화제를 발라 「면도날」 같은 소리로 바꿔버렸다. 개조한 피아노를 치면서 임씨가 말했다. 『소리 섹시하죠?』 그 섹시한 소리를 살리느라 스튜디오 조정실은 또다시 담배연기 자욱한 굴뚝이 됐다.<오미환 기자>오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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