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 연구소 한국사 강좌서 비교분석/정조사후 개혁안·인재 산산조각/조광조급진적인 추진 후세엔 모범/YS방향성·주도층 헌신성 없어『개혁하는 것이 옳은가, 그저 하던대로 그냥 가는 것이 옳은가… (이대로 가면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중국고대 하·은·주) 세 나라의 제도를 일시에 되살리기 어려운 것은 물론, 그나마 그런대로 괜찮은 정치조차 기약할 수 없다』 개혁을 꿈꾼 조선 정조(1752∼1800년)임금은 당시 상황을 『큰 병을 앓는 사람이 기운이 다 빠진 상태』에 비유하며 이렇게 진단했다. 시대와 여건은 다르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도 이런 식의 치열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집권 4년이 지난 지금 문민정부의 개혁은 「한보와 몸통」으로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심지어 「실패」라는 성급한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김정기·서원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실패한 개혁의 역사」를 주제로 5월6일∼6월3일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건설 뒷편 연구소사무실에서 진행할 한국사교실 강좌는 이러한 문제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성찰해보는 자리이다.
「진보적 개혁을 꿈꾸면서 보수적 개혁을 추진한 정조」를 강의할 박광용 가톨릭성심대 교수는 『정조는 개혁에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아주 아깝지만, 사망 직후 반대세력에 의해 5년만에 모든 개혁안과 키워놓은 인재, 개혁을 위한 물리력이 대부분 제거됐다는 점에서 결국 실패한 군주』라고 지적한다. 박교수는 그러나 정조의 개혁이 『총론(기본방향)과 각론(실천방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고 있다. 정조는 재위 3년 6월 발표한 국정방침에서 『백성에게 생업을 만들어주고 인재를 기르며 군사제도를 다스리고 재정을 풍족하게 한다』는 4가지 원칙에 관한 세부사항을 밝혔다.
조선의 개혁정치를 논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인물이 16세기 초 중종 때 활약한 조광조(1482∼1519년). 고영진 광주대 교수는 그를 「실패한, 그러나 성공한 조선시대 개혁의 이상」으로 평가한다. 후대에 이이는 「당시 조광조를 위시한 사림이 젊고 정치경륜이 짧은데다 개혁을 너무 급진적으로 추진하다 노련한 공신과 외척세력의 반발에 부딪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볼 때 이들은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후세대들이 이들의 개혁을 모범으로 삼아 구현하려 했으며 또 상당부분 실현됐기 때문이다. 고교수는 바로 이 점이 『지향점도, 내용도, 추진세력의 헌신성도 없는 오늘날의 「개혁」이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비판한다. 거산(김대통령의 호), 홍재(정조의 호), 정암(조광조의 호) 세 사람이 다시 먼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 지 궁금하다.
한국사교실은 「신돈」(홍영의 국민대 강사), 「대원군」(김정기 교수), 「고종」(이윤상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의 강의도 마련한다. (02)3672―4191∼2. 회비 2만5000∼3만원.<이광일 기자>이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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