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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론의 미 토크쇼/조재용 뉴욕 특파원(특파원 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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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론의 미 토크쇼/조재용 뉴욕 특파원(특파원 수첩)

입력
1997.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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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그랜트는 미국 라디오 토크쇼의 진행자 가운데 선두그룹에 속하는 스타이다. 보수 우파의 목소리를 선창하고 여론화하는 영향력으로 미 언론계에서 자기 몫을 갖고있는 중량급이다. 그의 라디오 쇼 경력은 20년이 넘는다.지난해 이맘때 쯤 미 방송계에서는 그의 이적이 대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까지 ABC라디오의 간판스타였던 그의 쇼는 이 회사에 최고의 광고료를 올려주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랜트는 보스니아 출장중 비행기사고로 숨진 론 브라운 당시 상무장관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들어 인종차별적인 코멘트로 물의를 일으켰고 당황한 방송사에서는 그를 해고해 버리는 것으로 문제를 덮었다. 「ABC가 그랜트를 해고했다」는 소식에는 「감히」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 그후 ABC는 대타를 기용했지만 요즘까지도 새 토크쇼는 그랜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채 고전중인 모습이다. 그랜트는 대신 다른 전국 네트워크 경쟁사인 UPN으로 이적, 같은 성격의 토크쇼를 맡아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국의 라디오 토크쇼는 개성과 주견이 뚜렷한 진행자가 의견을 제시하고 청취자의 전화참여를 유도해 토론을 벌이는 포맷이 대부분이다. 전파사용이 자유로운 미국에서 크고 작은 라디오 방송국이 쏟아내는 토크쇼들은 부지기수이다. 일종의 토론 프로그램이지만 진행자의 개성이 프로의 성격을 그대로 결정하는 선명한 색채 때문에 언제나 열띤 광장이다. 아무리 민감한 사안이라도 다른 견해에 대해 눈치를 보지않고 원색의 의견을 거침없이 토해낸다. 얼띤 중도나 「산술적 균형」이 없어 화끈하다. 그랜트가 출장중 순직한 상무장관에 대해 인종적인 발언을 한 것도 토크쇼 성격상 하등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그랜트는 확실한 골수 보수주의자이다. 그의 프로를 들어보면 흑인과 범죄 빈곤 이민 등 미국사회의 아킬레스건에 해당하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백인 주류사회의 속마음이 어떤가를 있는 그대로 알 수 있다. 미국민들의 살아움직이는 머릿속을 들여다 보고 싶으면 토크쇼 청취가 첩경이라고 할 만하다.

정치 시사문제를 다루는 라디오 토크쇼들은 대부분이 보수 공화당 색깔을 지니고 있다. 특히 선거철 이들이 쏘아대는 정치토론은 전국을 시끄럽게 한다. 특유의 여론 결집력을 발휘하면서 그만큼 영향력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보통의 TV나 신문 등 유수 언론에서는 이런 방식의 내용은 볼 수 없다. 이들은 아무래도 「건전」하고 평균적인 상식으로 정론을 앞세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말해 미국의 라디오 토크쇼는 반정론의 언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언제나 정론만을, 누구나 정색을 하기에만 익숙한 우리로서는 사뭇 다른 토론문화를 느낄 수 있다. 우리식의 정론과 정색들에 허세와 이중성이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은 「한보파동」에서 드러나는 적나라한 부조리에서 다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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