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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들’ 청문회를 보고… 듣고…/최인호 소설가(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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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아들’ 청문회를 보고… 듣고…/최인호 소설가(특별기고)

입력
1997.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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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또 울고 통곡하여라현철군.

난 군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얼굴을 처음으로 본 것도 지난번 검찰청에 불리어 갈 때 수사관을 양옆에 두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였다. 젊은 날의 그대 아버지를 똑 빼닮아 복제인간이라도 된 것같은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정말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오늘 마침내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군의 모습을 두 번째로 보았다.

현철군. 대통령 김영삼의 아들 김현철군.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어쩌다 우리 모두가 이 지경이 되었느냐. 대통령의 아들을 청문회에 불러다 놓고 우리 모두가 죽일 놈, 살릴 놈하며 삿대질하는 무간지옥의 살풍경을 연출하게 되었느냐.

현철군.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이 그 무지막지한 군부독재와 맞서 싸울 때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모두 알고 있다. 내가 대학교 다닐 무렵인가. 군의 누나도 같은 대학에 다녔었다. 군의 아버지를 똑 닮아 누가 봐도 그 분의 따님임을 알 수 있었던 나는 누나를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 「용타, 참으로 용한 자식들이다!」하고 응원했었다.

현철군.

그대도 참으로 용한 대통령의 아들이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느냐. 무자비한 탄압 속에서도 어린 시절을 보낸 현철군.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었겠느냐. 난 안다. 외부의 탄압이 있을수록 가족들의 우애는 더욱 더 강해진다는 것을.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가 군을 그토록 감쌌던 것은 그 어려웠던 시절의 가족애 때문이 아니었겠느냐.

그러나 현철군.

그 어렵던 시절의 고통 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웠느냐. 얼굴은 TV를 통해 딱 두 번을 보았으면서도 군의 이름은 아버님이 대통령이 된 직후부터 전국을 떠돌았다. 난 사업을 하는 사람도, 정치지망생도 아닌 한갓 작가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 귀에까지 군의 이름은 유령처럼 떠돌았다. 심지어 문단에서는 구속된 작가 황석영의 석방을 위해서 군에게 청원하였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였다. 이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현철군. 군의 이름은 마치 암행어사처럼 온 국민들에게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군은 청문회에 불려나오면서 그리고 매스컴에서 예견하듯 구속될지도 모르는 현 상황에 대해서 억울하고 분한 느낌을 가지면서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고 한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철군.

이 모든 불행은 어느날 갑자기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의 경고 끝에 가장 마지막 단계에 찾아오는 것이다. 삼년전 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신문에 실린 광고를 보았을 때 나는 이게 아닌데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누구든 출판의 자유는 있지만 군은 대통령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런 책을 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미지를 유권자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 쓰지도 않은 원고를 출판하는 일종의 홍보작전에 불과한 것 아닌가. 그뿐인가. 군은 몇번씩이나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소송하였으며 몇몇 언론기관들과 맞서 싸워왔었다. 어째서 군은 자신이 그런 소문의 진원지에 있다는 그 잘못된 근본원인은 깨닫지 못하고 그 더러운 권력의 핵심부에 서서 마치 터미네이터처럼 어리석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단 말인가. 더 웃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유엔(UN)한국청년협회라는 곳의 회장으로까지 취임했단말인가. 그렇다. 군의 비극은 몇차례의 경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비극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현철군. 이 모든 비극은 그대의 비극일 뿐 아니라 대통령의 비극이며 모든 국민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 어쩌다가 우리 모두가 이지경에 이르렀는가.

그러나 현철군. 나는 청문회에서 군의 눈물을 보았다. 군의 눈물을 보면서 그 눈물이야말로 거짓이 난무하는 이 사회에 하나의 교훈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러나 그대의 눈물조차 계산된 연기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임을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대는 분명히 잘못했다.

잘못하고, 잘못하고, 잘못하고, 잘못하였다. 변명하지 말아라. 그대는 정말 잘못하였다. 그리고 울어라. 차라리 대답하려 하지말고 울어라. 진심으로 울고 또 울고 통곡하여라. 군이 진심으로 뉘우칠 때 해방이후 50년이 지나도록 단 한사람의 통곡하고 뉘우치는 의인을 만나지 못한 비극적인 우리나라에 최초의 인물이 태어날지도 모른다.

죽어라 현철군.

의연하게 일어서 뉘우치고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라. 감옥이 무에 두렵겠느냐. 그것은 불명예가 아니다. 소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다. 이 죄의 용서에 대해서 창녀 소냐는 이렇게 말한다. 『일어나서 네가 더럽힌 땅에 엎드려 입맞추고 울면서 사방을 향해 「나는 죄를 범했다」고 소리치며 고백해. 그러면 하느님이 너를 다시 살려주실거야』

현철군.

난 안다. 너의 고백이 우리 사회에 만연된 죄와 거짓말을 각성시켜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임을. 그러므로 땅에 엎드려 입맞추고 울면서 너의 죄를 고백하라. 그러면 군의 가족들과 그리고 내가 믿는 하느님께서 다시 살려내어 그대를 부활시켜주실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러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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