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출산 등 몸균형 깨지고 스트레스 풀 기회 적어/발병가능성 남성의 2∼3배여성은 남성에 비해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 3배나 높다는 게 통설이다. 생리나 출산 등으로 몸의 균형이 깨지기 쉬운 데다 스트레스를 풀 기회나 방법이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 환자 치료를 위해 우선 체내 생화학 물질의 균형 파괴나 신경내분비 계통 이상, 유전이나 개인의 심리적 특성 등 선천적 요인을 점검한다. 이와 함께 환자가 처한 사회문화적 조건과 주변환경 등 후천적 요인에 대한 상담에도 비중을 둔다.
서울중앙병원 김성윤 박사(정신과)는 『심리 상태를 조절하는 뇌속 신경전달 물질이 정상치에서 벗어 나거나 각종 호르몬 균형이 깨질 때 우울증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설명했다. 일조량이 적은 가을이나 겨울에 증세가 자주 나타나는 「계절성 기분 장애」나 출산에 따른 생리적인 변화가 가져 오는 「산후 우울증」이 이런 유형에 들어 간다.
H신경정신과 박정미씨는 『대체로 내향적 성격이면서 자존심이 강하거나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려는 사람일 수록 우울증의 포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을 경우 발병률이 높다는 보고도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이민수 교수(신경정신과)는 『우울증을 동시에 호소하는 형제 자매가 많고 쌍둥이가 함께 발병하는 사례도 흔하다』며 『보통사람은 우울증 발병 빈도가 1%정도인데 우울증 환자가 있는 가족의 발병률은 5∼15%로 훨씬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덧붙였다.
광혜병원 신승철 원장(신경정신과)은 최근의 우울한 사회분위기도 선천적 요인 못지않게 주부 우울증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경기불황에 따른 가장의 실업 및 사업실패, 전세보증금 상승 등 사회경제적 분위기가 주부 우울증에 한몫을 하고 있다』는 것. 핵가족화로 인한 가족간의 대화 단절이 우울증의 토양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는 『자녀 교육문제, 남편외도, 고부간의 갈등 등 가족문제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생활이 주부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면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40, 50대 주부 대부분은 가족문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우울증 극복 어떻게/가족의 관심·도움있으면 충분히 치료/아내·엄마의 역할 인정/서로 고민 터놓고 얘기/나들이 등 긴장해소 도움
밤잠을 설치고 『만사가 귀찮다』며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는 아내, 매사에 짜증을 내면서 자녀에게 무관심한 엄마.
전문가들은 『이런 증상을 보이면 우울증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선천적 요인에 의한 것이나 중증인 경우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경미한 우울증은 가족의 관심과 도움으로도 충분히 치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 송파구에 살고 있는 주부 L(38)씨는 『머리가 콕콕 쑤시고 밤잠을 잘 수 없어』 정신과 의사를 찾았다. 남편의 구박과 자녀의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견디기 어려웠고 때로는 죽고 싶을 때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를 상담한 전문의는 『신체적 이상은 없었다』며 『성격상 약간 문제가 있지만 가족의 무관심과 냉대가 주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H신경정신과 박정미씨는 『우울증 주부는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남편과 자녀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십분 인정해 주고 가족의 문제를 공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밤늦게 귀가한 이유를 묻는 아내에게 『당신은 얘기해도 몰라, 뭘 알려고 해? 살림이나 잘 하면 돼』라고 말하는 남편. 공부를 제대로 안한다고 야단을 맞고서는 분풀이 하듯 『엄마가 뭘 안다고 그래? 알지도 못하면서…. 정말 왜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어』라고 되쏘는 자녀. 바로 가족의 이런 무심한 언행이 주부 우울증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광혜병원 신승철 원장(신경정신과)은 『주부가 자신의 생각과 고민을 터 놓고 얘기하는 게 우울증 극복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도리어 증세가 악화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자신에게로 눈을 돌리는 노력은 안 하고 외부로만 화살을 돌릴 경우 당연히 반발을 사게 돼 오히려 우울증이 심해지는 사례도 많다. 『우울증 환자의 언행은 한수 접어 받아 들이는 가족의 따스한 배려가 중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그래서 나온다.
남편이나 자녀가 함께 등산이나 나들이를 가도록 손을 끌고 주부 스스로도 운동이나 독서, 레저활동을 통해 정신적 긴장을 푸는 것이 우울증 예방과 치료 모두에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김성호 기자>김성호>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이주경·이주연씨/헬스·학원 등 바쁜 생활/미시탤런트로 ‘제2의 삶’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주경(28)씨와 이주연(26)씨는 한때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던 주부들. 결혼후 급격한 환경 변화와 시집식구와의 갈등 때문에 찾아 온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가족의 도움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유선방송인 동아TV의 「미시 탤런트」로 뛰고 있다.
이주경씨는 94년 5월 결혼과 동시에 집안 살림은 물론 중풍으로 11년째 누워있는 시어머니의 수발을 도맡아야 했다. 남편과 시집 식구들은 시어머니 위주였고 이씨는 안중에도 없었다. 『약이나 음식을 시어머니께 드릴 때 아버님이나 남편이 옆에서 지켜보곤 했어요. 감시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외롭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린 이씨는 밤이면 손발이 마비됐고 불면증과 두통이 찾아왔다. 늘 청심환을 끼고 살았다. 『몸이 쇠약해지자 시댁식구들의 태도가 달라졌어요. 어머니를 위해 간병인을 두고 남편과 시댁식구들이 전보다 훨씬 따뜻이 대해 줘 차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가사와 간병 부담을 던 그는 혼자만의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 요리공부를 하고 수예와 꽃꽂이를 배웠다. 실내장식을 고쳐 집안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애썼다. 매사에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려 노력했고 시집식구들도 그가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런 도움에 힘입어 우울증을 초기에 잡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남편의 권유로 미시탤런트 선발대회에 참가했다. 은상을 획득해 방송활동에 나서 활기찬 제2의 삶을 찾아 가고 있다.
이주연씨는 90년 19세의 나이에 결혼했다.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결혼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분가하는 바람에 낮에는 늘 혼자였다.
『시집이나 친정은 나를 거들떠 보지도 않았고 남편은 사업관계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학교나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연락이 잘 되지 않았어요. 나이 차이 때문에 이웃 주부들과도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혼자있는 시간이 늘어 나면서 집안에 있기가 두려워 졌다. 환청 증세가 나타나는 등 상황이 급격히 악화했다. 병원신세도 졌다. 『비명을 지르고 쓰러진 적도 있었어요. 체중도 나날이 주는 등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닥치는 대로 학원을 다녔습니다』
이씨는 이후 헬스크럽, 지점토 공예학원, 운전교습 학원 등 하루 일과를 빡빡히 짜 놓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그는 조금씩 삶의 보람을 찾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계속 학원 등에 다니며 「배움의 길」에 몰두했다. 『학원에 다니며 할 일을 찾다보니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몸은 피곤했지만 일에 매달리다 보니 어느새 우울증은 먼나라 이야기가 돼 버렸습니다』
그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처지도 비슷한 이주경씨를 만나 미시탤런트 선발대회 이야기를 듣게 됐고 함께 출마해 동상을 획득했다. 현재 TV 리포터로 활동중이다.
두사람의 웃음은 밝았다. 『가족의 도움도 컸지만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는 무엇보다 본인 의지가 중요합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자아를 계발하려 애쓰는 게 우울증 치료의 특효약이에요』<염영남 기자>염영남>
◎전문가 진단/이민수 박사·고대 안암병원 정신과 우울증센터/‘주부도 전문직’… 자기 계발에 항상 힘써야
주부의 일은 시대 변화에 관계없이 매우 중요하다. 과학 기술이 일을 덜었을 뿐 주부의 역할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전업 주부는 능력없는 여성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부 스스로의 노력도 없고 사회도 주부에 대해 무관심하다.
주부 스스로의 사명감 상실과 주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 저하는 주부 우울증을 증가시키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의학적으로 주부 우울증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주부의 울적한 심리 상태가 도를 넘어 신체와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주부로서의 고유한 역할에 지장을 빚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주부가 우울하면 가정이 우울해 지고 가정이 우울하면 사회가 우울해 지게 마련이다.
주부 우울증 치료는 우선 『전업 주부이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렸다』는 생각에서 벗어 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또 자신의 우울증 신호를 알고 있다가 그 신호가 나타나면 『왜 내가 우울증에…』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우선 무슨일로든 움직여야 한다.
설사 우울증에 걸렸더라도 우울증은 일시적인 것이며 반드시 치료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어느 정도 회복되면 자신을 우울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혼자서 어려우면 주위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증상이 심각해 아무것도 할 수 없거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경우에는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병원에 가면 우선 내과검진과 혈액·소변 검사, 신체 각 기관의 기능 검사, 등을 통해 신체 질환에 의한 우울증 여부를 판별해야 한다. 또 다양한 전문적 심리검사도 거쳐야 한다. 요즘에는 전산화 신경 인지기능 검사를 통해 객관적인 진단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장기적인 검사와 전문의 면담평가를 통해 우울증 여부를 확실히 진단받을 수 있다.
우울증 확진이 나오면 곧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약물치료, 정신치료, 집단인지치료, 정신치료극, 광선치료, 전기경련요법 등 환자 개개인에 알맞는 치료책이 있다.
우울증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제라도 편안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인간관계를 일궈 놓아야 한다. 취미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혼자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준비하면 좋다. 나름대로 하루 또는 일주일 생활계획표를 만들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역할에 대한 신념을 갖는 것이다. 주부는 어떤 직업보다도 다양한 능력을 필요로 하는 전문직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항상 자기 계발에 힘쓰고 틈틈이 책을 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씩 실천에 옮겨질 때 주부 우울증이라는 말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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