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김현철 청문회」가 열린 25일 TV화면을 지켜본 사람들은 우리 정치사의 질곡 앞에 착잡한 심정을 가누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이 각종 이권사업과 주요인사에 개입하는 등 국정 농단 혐의로 재임중에 청문회에서 신문받는 모습은 김씨의 표현대로 「두번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될 불행한 일」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이날도 김씨의 잘 계산된 의도 때문에 한보는 거대한 정경유착비리의 실체적 진실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대부분의 증인과 마찬가지로 김씨도 부인과 해명성 변명으로 일관해 그간 그를 싸고 돌았던 각종 의혹은 여전히 미궁으로 남게 됐다. 대통령 아들다운 의젓함이나, 진실을 털어놓고 관용을 호소하기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희망은 여지없이 무산되고 만 셈이다. 어느 위원이 「이 자리를 지켜보는 전국민들이 배심원」이라는 질타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청문회를 계속해야 하나」하는 시중의 강한 불신감과 회의감만 증폭시키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날 청문회가 맥빠지게 된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책임의 주요한 몫은 여당측이 져야할 것 같다. 우리는 기회있을 때마다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이 청문회의 목표이며 여기에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바 있다. 청문회 제도 자체의 제약도 있긴 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유감스럽게도 정치권이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 우리 생각이고 이날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신한국당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당총재인 대통령의 아들이 증인으로 나와 국정농단혐의를 추궁받는 자리가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님도 잘 안다. 그러나 이제 한보비리는 일시적으로 덮어두거나 비켜날 수 없는 국민적 관심사인 점도 간과하지 말았어야 한다. 「아무리 감춰봐야 몇개월만 지나면 다 드러날 것을…」하는 시중의 소리를 한번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신한국당의 자세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노력을 다하고 난 다음 대국민 양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 아닐까.
야당의 신문 역시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는 거리가 있었다. 물론 증거확보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지금까지 나온 각종 설의 재탕, 삼탕에 지나지 않았다. 예를 들어 박경식씨의 테이프에 녹화된 사안과 같은 물증이 확보된 부분에 대한 질문마저도 체계적이고 집요하지 못했다. 증인을 옥죌 수 있는 「똑 떨어지는」 질문이 아쉬웠다.
아직 청문회기간이 남아 있고, 또 신문할 증인이 있다고는 해도 실체적 진실의 공은 이제 검찰의 손으로 넘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비록 청문회가 제도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고 의원들의 준비가 미흡했다고 하지만 이 사건에 관한 많은 부분이 이미 그 윤곽을 뚜렷이 드러냈다. 검찰의 수사는 그만큼 분명해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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