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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위의 역사/김영민 한일신학대 교수·철학(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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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깨위의 역사/김영민 한일신학대 교수·철학(1000자 춘추)

입력
1997.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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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으로 이야기하자면, 내 머리는 어깨에 비해서 백배나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기분이다. 데이터베이스화한 내 머리는 점점 무거워지는 반면, 그 지식이 요구하는 역사적 책임감은 오히려 점점 가벼워진다고 할까. 역사의식이란 한 사회가 공론을 통해서 각 구성원의 어깨에 배당한 무게인데, 우리 사회는 이 무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작금 출판계에서는 「역사 알기」가 상략의 발판을 딛고 때늦은 날개짓을 일삼고 있지만, 책 몇권을 머리에 담는다고 해서 어깨의 무게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릇 살아있는 것은 자기 역사를 만드는 과정이요, 그 흐름이다. 역사의 맥이란 자신의 전통을 창의적으로 계승하고 비판적으로 온축한 사회의 혈류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각 개인의 사람살이와 그 모듬살이의 길을 만든다.

우리 사회를 휘덮고 있는 「오멘」의 출처는 역사의 거름체를 통해 검증을 거친 길과 맥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소위 「뼈대」가 있다면, 일개 집안의 일도 원칙적으로 좇아야 할 길과 맥이 있는 법이다.

맥과 길이 분명해야 일에 효율과 깊이를 아울러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살림살이가 튼실하면, 한 집안이든 전체 사회든, 「있을 것은 있을 데 있고 없을 것은 없다」는 특성을 지닌다.

그러나 거듭된 내우외환으로 우리 역사의 맥과 전통을 제대로 건사할 수 없었던 우리 사회는, 해방이후 눈부신 물적 성장을 거듭하여 「무엇이나 아무 곳에서나 있고, 무엇이라도 어디에도 없다」는 잡탕주의 현상으로 눈이 부시다. 역사의 절맥 아래서 공간적이며 물량적인 은성에만 집착해온 농축 근대화인 것이다.

그러니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길과 맥이 보이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한편에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온갖 외제의 상품과 담론들이 유행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삶의 길을 이루는 기초적 상식과 합리조차 망각한 무지와 봉건의 잔재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다. 그야말로 짬뽕이며 개밥이다. 작금의 때늦은 복고주의도 한시적 유행이나 향수로 그치고, 세계화도 내실없는 제스처에 머물고 있다. 요컨대, 이 모든 것이 역사의 무게와 두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졸속한 혼합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도대체 「뿌리깊은 나무」도 「샘이 깊은 물」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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