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의 명저 「노붐 오르가눔」(신기관:Novum Organum)에서 「인간은 거꾸로 선 식물이다」고 기발한 말을 했다. 식물의 뿌리에 해당하는 인간의 머리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점을 들어 이처럼 표현한 것이다.머리가 신체의 가장 위에 있다는 것은 하늘에 그만큼 가깝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긍지를 가짐과 함께 때로는 오만하고 하늘에 도전하려는 건방진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 인간이 식물처럼 뿌리인 머리를 아랫부분에 가졌다면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최근 한보의 정태수 정보근 부자 등의 청문회 증인들의 증언태도와 검찰조사를 받은 많은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거꾸로 선 식물」인 인간의 오만 그대로다. 정씨부자 등은 「모른다」 「기억에 없다」는 증언을 연발했고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을 부인하는 뻔뻔스러움을 보였다. 정말 하늘 높고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느님은 바벨탑을 쌓아 천국까지 기어오르려는 「머리쳐든 인간」을 서로 말이 통하지 않도록 하는 등 징계했다. 인간이란 「식물」은 아직도 그 징계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오만하게 머리를 들고 진리와 정의에 대한 도발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다. 정씨부자와 정치인 등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 울화통이 치밀어 봄을 느낄 겨를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4월도 벌써 하순이다. 온갖 꽃이 만발하고 산야는 연초록으로 새옷을 갈아 입고 있다. 이에 화답하듯 강과 저수지에선 산란을 하는 붕어들의 물장구 소리가 막바지를 치닫고 있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은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고(춘래불사춘) 흥이 나지 않는다.
그많은 국회의원이 조사를 받고도 의원직 사퇴는 커녕 대국민 사과성명 하나 낸 사람이 없다. 다 먹는데 재수없이 걸렸다는 투에 오히려 음모설을 내세워 역공을 취하거나 말장난으로 혐의 사실을 흐리려는 의원 뿐이었다. 책임의식을 찾을 수 없다. 백성들을 무서워했다면 이럴 수는 없을 것이다.
국회의장이라고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입법부의 수장임을 내세워 검찰출두에 저항했을 때는 그런대로 일리가 있었다. 결백을 믿고 싶었다. 기대와는 달리 한보로 부터 5,000만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이젠 국회의장이란 자리의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거취를 밝힐 만도 한데 말이 없다.
인간이 오만하게 머리를 쳐들고 정의와 진리에 도발한다고 해서 세상이 거꾸로 가지는 않는다. 사타구니 사이에 머리를 넣고 뒤로 세상을 본다고 세상이 뒤집히지도 않는다. 백성들은 짓밟히고 밟혀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치인들은 엄숙히 가슴에 담아야 한다.
이 말은 오늘 청문회에 출석하는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김씨의 청문회 증언은 어떠한 의미에서든 역사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그동안 김씨가 수많은 의혹과 소문을 달고 다녔기 때문에 솔직히 국민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은 그동안 진행된 청문회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 성의 없고 「오리발」식의 답변으로 상을 차린 이번 청문회는 없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김씨는 사법처리 방침에 반발해 청문회에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들리기도 했다. 극단적인 행동은 사태를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간의 머리는 위에 있다고 해도 하늘 아래다.
김씨는 오만함을 버리고 청문회에서 진상을 밝힐 책임이 있다. 자신을 따라 다닌 소문과 의혹이 얼마나 많았던 가를 안다면, 아들을 청문회에 세운 대통령의 아픔을 이해한다면, 주시하고 있는 국민들을 무서워한다면 김씨가 택할 길은 오직 하나다. 바로 진솔이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빼앗긴 봄을 찾아주는 길이기도 하다. 봄도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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