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위 위원들 ‘겉핥기 신문’ 무력화24일 상오 국회 한보특위청문회장. 10시 정각 이날의 첫번째 증인인 정일기 전 한보철강 사장이 증인석에 앉았다. 정씨는 20여년동안 한보그룹의 회계일을 총괄해 맡아 온 세무·회계전문가. 외모부터 회계전문가답게 깐깐하고 치밀해 보였다. 자연스럽게 신문을 벌일 여야의원들도 새삼 자세를 가다듬고 전의를 다졌다.
그러나 승부는 싱겁게 판가름났다. 의원들이 앞세운 정치논리의 창으로 정씨가 구사한 회계논리의 방패를 뚫기란 무리였다. 더구나 정씨는 앞선 청문회를 통해 확인된 사실, 자신이 검찰에서 미리 진술한 부분까지 눈하나 깜짝않고 부정하는 「강심장」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특위의 무기력함은 첫번째 공격수로 나선 이인구(자민련) 의원 신문부터 확인됐다.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의원은 위압적으로 『증인이 회계장부상에 대여금으로 처리한 2,000여억원이 모두 정태수씨의 로비자금으로 쓰이지 않았느냐』고 몰아세웠다. 그러나 정씨는 『2,000여억원은 실제 액수가 아니고 계수상의 수치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등 시종 「회계논리」를 들이댔다. 이러자 이번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재정통인 김원길(국민회의) 의원이 세번째 신문자로 출전, 정씨 못지않은 전문지식을 과시하며 『증인이 꿰맞춰 준 정태수씨 비자금의 총규모가 얼마냐』고 캐물었다. 정씨는 한동안 김의원의 전문적인 신문에 주눅드는가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자본가수금 처리 등 김의원보다 더 복잡한 회계전문용어를 동원해가며 예봉을 피해나갔다.
정씨의 「미꾸라지식」 답변태도가 계속되자 후반부 질의를 벌인 의원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사람』이라며 인식공격으로 화풀이를 했다. 그래도 회계실무경험과 논리로 무장한 정씨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신효섭 기자>신효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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