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수 한보그룹 총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을 위해 투자한 개인 돈이 110억원 뿐이라는 얼마전 한보관계자의 청문회 증언은 우리 기업현실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정총회장이 단 110억원으로 자산규모 5조원이 넘는 당진제철소를 손에 넣을 뻔했던 비결은 단순하다. 은행돈을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듯 마음껏 끌어다 쓴 것일 뿐이다.
부도방지협약으로 가까스로 최악의 상황은 일단 모면한 진로그룹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도 자기자본 비율이 4.3%에 불과할 정도로 열악한 재무구조 때문이다. 그나마 언제 교환이 돌아올지 모르는 불안정한 제2금융권 부채가 절반을 넘어선 상태다.
어디 한보와 진로뿐인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기자본의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빚더미위에서 지탱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당초 3조7,000억원으로 추정됐던 당진제철소 건설비가 2∼3년 사이에 갑자기 5조7,000억원으로 불어난데는-비자금조성을 위한 자금유용 탓도 있지만-새로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금융비용 증가의 악순환이 한 몫을 했다.
이달초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30대 대기업집단의 평균 자기자본비율은 18.3%로 지난해(20.5%)보다 더욱 낮아졌다. 부채의존형 기업경영구조가 개선되기는 커녕 도리어 악화하고 있는 것이다.
빚이 많은 기업의 경영이 건실할 수는 없다. 그래서 웬만한 대기업이라도 자금시장에서 나쁜 루머가 한 번 돌면 휘청거린다. 악성루머도 문제지만 찬바람만 불어도 감기가 드는 기업체질은 더욱 문제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기업들이 진정한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취약한 기업재무구조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가뜩이나 우리의 금리는 경쟁국들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부채비율을 줄인다면 그만큼 금리를 낮추는 효과를 얻게 된다. 정부와 은행이 나서서 기업의 부도를 막아주는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기업의 자구노력은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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