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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박열병」 어디까지(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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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박열병」 어디까지(사설)

입력
1997.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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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입시학원인 종로학원의 정경진 원장이 일본에서 내기바둑을 두었다가 6시간여만에 46억원을 잃은 사실이 드러났다. 얼마 전에는 60대 중반의 산부인과 여병원장이 사기고스톱판에 끼였다가 43억여원을 잃은 사건이 보도됐다. 그는 도박빚을 갚기 위해 병원, 아파트를 팔아야 했고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남편은 쇼크로 사망했다.우리 사회에는 도박이 열병처럼 번져 있다. 관광과 섹스를 매개로 한 마카오 등지의 해외도박이 물의를 빚고 호주의 시드니에서는 도박빚을 진 교민의 부인들이 빚을 갚으려고 매춘에 나서 국제망신을 당했다. 필리핀 등지에 관광객을 가장해 출국한뒤 수십억원대의 도박판을 벌인 사람들도 자주 적발되고 있다.

그러나 정씨와 여병원장처럼 상류층에 속하는 두 사람의 경우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일반도박꾼들과 다르다. 정씨는 알려질대로 알려진 저명인사이며 교육사업가이다. 인기수학강사로 명성과 돈을 얻은 그는 대입시학원을 차려 전국 곳곳에 자매학원을 운영하는 「과외교육계의 거물」로 자리를 잡았다. 명문학원의 경영자가 사회교육가로서의 직분을 잊고 도박에 휩쓸린 사실만으로도 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의료활동을 통한 사회봉사기능에 충실해야 할 여병원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도박은 일탈행위이다. 정신병리학자들은 정씨와 같은 상류층의 도박행태에 대해 돈을 잃고 싶은 욕구, 부와 명예의 획득과정에 대한 죄책감이 작용한 것같다고 진단하고 있다. 모험과 재미를 추구하고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려는 심리, 돈을 땀으로써 쾌감과 정복감을 맛보려는 심리, 고정된 삶에 대한 허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왜 일상의 삶이 재미없었던 것일까. 이 사회가 그만큼 일탈을 꿈꾸게 하고 변칙적인 방법으로 만족을 추구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닌가. 잉여재산을 활용할 건전한 투자의 통로는 막혀 있고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자기계발·관리의 풍토는 아직도 정착돼 있지 않다.

도박심리는 전염된다. 그 전염성과 중독성은 매우 강하며 우리 사회의 예방·치유력은 여전히 미약하다. 상습도박자들은 지탄받고 처벌받아야 하지만 사회정의의 미확립, 경제질서의 왜곡, 중·노년을 위한 건전한 여가정책 미비 등 사회 전반의 문제를 경시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요즘의 사기도박조직은 대부분 폭력조직과 연계돼 있다. 범죄단체 근절차원에서 사기도박조직이 발을 붙이지 못하게 단속을 강화해야함은 물론이지만 보다 근원적인 것은 사회적 감시, 고발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해외관광이 건전해지도록 유도해야 하고 상습도박자들에 대한 처벌 강화를 통해 도박열병을 치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가정과 사회의 파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도박열병의 해소에 기여해야 할 사회지도층이 스스로 도박의 전염·확산에 앞장선 것이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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