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과 트롯사이,거기엔 황무지뿐…/10대에 치이고 40대에 차이고/업계서도 “구매력없는 계층” 간주/설자리 없는 ‘386세대’의 문화욕구/비디오시장서 분출… 잠재력 확인대중문화에 관한 한 30대는 자신의 주소를 찾지못하고 방황을 거듭해 온 불행한 세대다. 신세대나 40대이상 중년층 사이에 끼어 자신들만의 독특한 특성이나 잠재력을 결집하지 못한 채 샌드위치적 편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세대들이 자유분방한 분출력을 대중문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내고 장년층이 한국전이후 배고팠던 시절의 향수를 멜로물과 트롯을 통해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반면 30대는 자신들을 대변할 대중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같은 30대의 대중문화적 취향은 색깔로 따진다면 회색에 가깝다. 30대는 노래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룰라의 「날개잃은 천사」나 「연인」, 김건모의 「스피드」 등 랩과 댄스를 그런대로 어색하지 않게 따라부를 수 있지만 이미자와 패티김도 친숙하다.
은행 대리인 박모(35)씨는 『회식을 마치고 신세대 부하직원들과 2차로 노래방에 함께 가는 것은 대리급 30대들이다. 또 부장 등 40대이상 세대들의 모임에도 신세대들과 달리 30대들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다. 30대들은 이런 점에서 세대간 가교역할을 하지만 우리끼리 모여있을 때는 뭔가 뚜렷히 「우리만의 것」을 찾기 힘들다』고 말한다.
30대의 이같은 회색적 성향 때문에 철저한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대중문화업계에서는 「구매력 없는 계층」으로 무시되고 있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MBC TV 주철환 PD는 『세계 어느나라든 30대는 그 나라 대중문화에서 나름대로의 영역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30대는 구매력은 물론 채널주도권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점 때문에 30대 시청자를 의식하는 예능프로그램 제작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30대의 이같은 특성은 그들이 대중문화적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시절을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에 보냈다는 사실에서 원인을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은 군사통치시대에 그들의 주제는 언제나 「투쟁」이었다. 젊은이다운 영화나 가요 등에 대한 탐닉은 무자비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그들은 「선봉에 서서」 「광야에서」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등 운동권가요를 부르며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밖에 없었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출신으로 대중가수로 전환한 김광석 안치환 등이 아직까지 30대의 사랑을 받는 것도 이같은 정서적 공감대 때문이다.
30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90년대초에 이들의 대중문화적 욕구는 비디오로 분출됐다. 당시 미국 메이저영화사들의 국내 진출과 함께 대형영화들이 봇물처럼 비디오로 출시됐다. 이 비디오시장의 폭발적인 팽창을 주도한 계층은 지금의 30대(당시 20대 후반)들이었다.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비디오의 간편성과 은밀성이 어두운 시절 대학생활을 하면서 대중문화에 대한 갈증을 숨겨온 30대들의 선택과 결합된 결과였다.
콜롬비아영화사 홍보실장 주종휘씨는 『91년을 기해 국내 비디오시장은 질적인 전환과 아울려 시장규모가 해마다 300%이상씩 성장하는 양적인 팽창을 이룩했다. 비디오는 포르노라는 등식도 깨졌다. 이러한 비디오시장 성장의 일등공신은 당시 직장생활을 막 시작한 20대후반, 지금의 30대다』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30대의 폐쇄적인 대중문화욕구가 서서히 탈바꿈하는 신호가 여러군데서 감지되고 있다. 사회인으로서 자리를 잡으면서 그동안 감추고 있던 잠재력을 표출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단적인 예가 3월13일부터 4일간 종로 연강홀에서 열린 「산울림」공연. 10대와 20대풍으로의 전환을 시도했던 산울림의 의도와 달리 넥타이를 맨 30대 직장인들로 공연 한시간전에 표는 매진됐다. 이들은 공연 막바지에는 모두 일어나 몸을 흔들었고 앵콜곡 5, 6곡을 더 듣고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산울림공연을 「30대들의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이씨는 『청소년층과 중년층사이에 끼어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받아온 30대들에게 「산울림」은 출구였다. 요즘 신세대 대중가요인 록과 펑크바람과 비교해도 그다지 구식이 아니며 대학가요제 시절의 상징이었던 산울림의 록그룹으로서의 새 출발은 그들에게 「되찾은 청춘」과 같은 존재였다』고 분석했다.
최근 영화 「초록물고기」의 흥행성공이나 꾸준한 음반판매를 기록하는 가수 조관우 이소라 등의 주 고객이 30대 주부라는 점, TV드라마 「형제의 강」 「첫사랑」 등의 성공등도 같은 맥락이다.
대중문화평론가 강영희씨는 『대중문화가 발전하는 데 30대가 기여한 바가 크다.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30대를 지칭하는 이른바 「386세대」는 앞으로도 대중문화를 단순한 연예와 오락차원에서 한차원 끌어올리데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최근 두드러진 30대들의 대중문화계 투신과 30대풍 영화의 성공은 이들이 긴 잠에서 깨어나 자각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송용회 기자>송용회>
◎30대의 대중문화 선호도/주부들 기억에 남는 영화 ‘서편제’/직장인 최고 인기가요는 ‘아침이슬’
30대 주부들에게 가장 기억이 남는 영화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또 대졸이상 30대 직장인이 좋아하는 대학가요는 무엇일까.
제일제당 사외보 「생활속의 이야기」가 최근 전국의 30대 주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국내영화는 「서편제」(22.1%), 외화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5.5%)였다.
이어 「투캅스」(10.2%) 「태백산맥」(5.4%) 「겨울나그네」(4.4%) 「미워도 다시 한번」(3.6%)이 그 뒤를 이었으며, 외화는 「사랑과 영혼」(11.2%) 「벤허」(8.8%) 「사운드 오브 뮤직」(4.9%) 「닥터 지바고」(2.9%) 「로마의 휴일」(2.4%) 순이었다.
한편 MBC 「대학가요제」가 95년 10월 서울거주 대졸학력 이상 30대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학가요로 「아침이슬」(18.6%)이 뽑혔고 「광야에서」(7.8%)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6.4%)가 2, 3위를 차지했다.
특히 70년대 학번에게는 「젊은 연인들」이, 80년대 학번에게는 「나 어떡해」가 인기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가요제」에 초대하고 싶은 가수로는 심수봉 노사연(70년대 학번), 김건모 안치환(80년대 학번)이 각각 뽑혔다.<김관명 기자>김관명>
◎인터뷰/영화감독 육상효씨/“30대는 70·80년대의 대중문화를 추억할 뿐 90년대엔 소외된 주변인”
『30대들은 자신들이 10대나 20대 때 보고 들었던 대중문화만을 「추억」할 뿐, 지금의 대중문화에는 철저히 소외돼 있습니다. 요즘 대중문화는 10, 20대를 주 소비계층으로 겨냥해 이들의 입맛에 맞는 문화상품들을 쏟아내기 때문이죠』
스포츠신문 기자로 활약하다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으로 스스로를 「각색」한 육상효(34)씨는 30대를 한마디로 「대중문화의 주변인」으로 규정한다. 30대가 경제적인 능력은 있지만 대중문화를 향유할 시간과 정신적 여유가 없는 탓에 영화 TV드라마 가요 등 대중문화 영역의 생산자들이 기획단계서부터 30대를 철저히 배제하는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동시대를 살았던 육감독이 회상하는, 「30대가 추억속에 안주하는 70∼80년대의 대중문화」는 무엇일까. 『70년대는 영상문화보다 소리문화가 더 강했던 시대입니다. 칼러TV도, 비디오도 없던 때라 영화나 TV드라마보다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던 외국팝송이 더 많이 기억되는 시대이죠. 이에 비해 80년대는 영상문화가 만개한 시대입니다. 그러면서도 대학사회는 팝송 외화 심지어 국내 대중가요까지 「제국주의의 문화침략」으로 규정, 배척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육감독은 또 30대가 대중문화 수용단계에서부터 10, 20대에 비해 자의식이 무척 강한 점도 「대중문화의 주변인」이 되는 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얼마전 서울대에서 서클 소속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야한 댄스복을 입고 춤을 추는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80년대에는 「이런 노래를 들어도 되나, 농활가는데 나이키 운동화를 신어도 되는 걸까, 캠퍼스에서 선글래스를 써도 될까」하는 식으로 대중문화를 접할 때마다 매번 스스로를 점검했다』고 말한다.
육감독은 『지난해 마이클 잭슨 공연이 예상외의 반응을 얻었던 것은 30대 회사원과 주부들의 폭발적인 참여 때문』이라며 『10, 20대에 치우친 대중문화 생산 전략이 30대까지를 끌어안을 때 우리 대중문화는 보다 안정적인 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김관명 기자>김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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