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사건후 관계개선 첫 사업/독점창구역할 맡긴 배경 등 의혹/유력인사 개입 등 추정… 거액부실대출과 관련있는듯본사가 23일 입수한 한보그룹의 대북경협사업 관련문건은 한보그룹이 그동안 남북한 당국의 승인내지 묵인하에 사실상 경협밀사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 최근 국회청문회에서 한보그룹 정태수 총회장과 정보근 회장, 김종국 전 재정본부장 등은 한결같이 황해제철소 경영참여시도 자체를 완강히 부인했었다.
이 문건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KOTRA 홍지선(52) 북한실장과 한보그룹 이웅섭 부장의 통화내용으로 한보의 대북투자사업이 남북한 당국의 승인아래 이뤄졌음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번 지원한 사실에 장군이 고무됨』 『김성철에 따르면 2번 보고됐다』는 등의 대목은 한보그룹의 대북사업에 대해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 권력 핵심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홍실장이 『김보좌관과 김(종국) 사장의 회동을 조만간 주선하겠다』고 말했으며 메모중에는 「안기부 보좌관―공작담당―>안기부장」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두 김씨는 1월23일 모임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성사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북한 잠수함 강릉 무장침투 사건으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한보그룹의 황해제철소 사업이 검토됐다는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한 고위당국의 승인없이 남북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한보의 황해제철소 투자는 잠수함 사건이후 첫 대북경협사업이었다.
무엇보다 당국이 이미 대북경협사업에 참여해온 유수의 대기업들을 제치고 한보그룹에 독점적 역할을 맡긴 배경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다. 홍실장이 『2백70만달러 정도를 투자해 경협 정상화시 얻게 될 기득권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이며 향후 황철뿐 아니라 기타 제반사업, 동아시아가스관로 매설 등 모든 대북사업을 전담하는 것으로 하여 접근하겠다』 『…이 경우 모든 것이 공개적으로 진행될 것이므로―현대의 김책제철소 참여요구 등―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는 등의 대목은 KOTRA를 비롯한 관련당국이 현대그룹 등 다른 대기업의 경쟁을 따돌려가며 한보측에 앞으로 대북경협사업에서의 절대적 권리를 보장해주려 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곧 한보그룹과 당국사이에 모종의 묵약이나 특별한 거래, 또는 유력인사의 개입 등 여러가지 정황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다.
이 문건은 또 한보그룹에 대한 천문학적 액수의 부실대출이 가능했던 배경, 비자금의 사용처, 부도처리 과정 등과 관련,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선철지원과 자금협조는 연계시키지 말 것』 『「오비이락」이라고 지금 지원하는 경우 한보측과 담당자들이 NK사업을 빌미로 자금을 제공받을 목적만으로 사업을 진행시키는 것으로 오해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등의 대목. 부도위기에 처한 한보의 자금지원 등을 요청한데 대해 당국에서 나름대로 이유를 들어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대출압력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않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 볼때, 한보에 대한 엄청난 자금지원이 단순히 한보철강 등 국내사업지원 차원이 아니라 경협과 같은 주요대북현안과 연계돼 있던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또 북측에서도 한보의 자금위기를 대단히 불안해 하고 있었다는 정황에 주목한다면 부도처리도 보다 고차원적인 정책적 동기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느냐는 의심도 해볼만 하다. 예를 들어 한보가 본격적인 대북경협 파트너로서 더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판단 등이 작용했으리라는 추측이다.
한편 이 문건에 등장하는 KOTRA 홍실장은 95년 중국 베이징(북경) 남북 쌀회담을 성사시킨 막후 주역으로 최근 나진·선봉지역 무역관 설립을 위해 북한의 김문성 대외경제협력추진위 부위원장과 접촉하기도 했다. 또 한보그룹 이웅섭 부장은 정보근 회장의 최측근인물로 한보 NK공작의 실무책임자로 알려져 왔다.<박일근·이동훈 기자>박일근·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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