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불가·단일창구도 희석/부처별 ‘강·온’ 존재에 대외환경따라 방황『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은 「당사자간 대화」를 통해서만 논의할 수 있다』 『민간 차원의 지원은 「현금지원 불가」 및 「대한적십자사를 통한 창구 일원화」가 지켜져야 한다』
우리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대북 식량 지원의 양대 원칙이다. 정부 지원의 조건인 「당사자간 대화」에는 미국과 중국이 낀 4자회담도 당연히 포함된다. 북한의 식량난을 남북대화 재개의 단서로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뜻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민간 차원은 창구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원칙은 무분별한 대북 지원 경쟁이 빚어져 북한에 이용당하고 돌발사고가 발생해 남북관계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대북협상에서의 식량지원 카드가 손상될 수 있다는 고려를 깔고 있음은 물론이다. 통일원 당국자는 『주민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고 우리만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데 북한당국은 우리를 외면하고 있다』며 『민간단체들이 진정으로 북한 주민을 돕고 싶다면 굳이 대한적십자사 창구를 꺼릴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의 대북 지원 정책의 또 다른 한 축은 대북 관계 개선을 추진중인 미국·일본과의 공조체제 유지다. 그동안의 대북 지원 및 규제완화 조치도 따지고 보면 미국이나 국제기구의 대북 지원책에 발맞춘 것이거나 휩쓸린 것이다.
한편 정부 부처별로도 조금씩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4자회담을 성사시켜야 하고 북한의 후원국인 중국과 미국 등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외무부는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태도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많이」라는 정서가 분명히 느껴진다. 지난 2월 600만달러의 대북 지원도 원래는 500만달러였으나 외무부의 입김으로 100만달러가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수차례에 걸쳐 북한 당국이 심각한 식량난에도 불구하고 4월15일 김일성 생일 행사와 군사훈련에 막대한 돈을 들였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대북 지원 여론이 퍼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기부 주장의 초점은 『북한이 군량미부터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 당사자 대화」 및 「현금 불가, 창구단일화」의 두 원칙도 95년 쌀 15만톤을 북한에 전달한 후 정부에서 내 걸었던 원안에서는 상당히 후퇴한 것이다. 민간 차원의 경우 애초에는 「쌀 불가」도 들어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등 유력단체들이 독자적으로 북한에 쌀을 보내면서 「쌀 불가」 「창구단일화」 원칙은 많이 희석됐다. 굶주린 동포를 돕겠다는 움직임을 묵인할 수 밖에 없었다. 지난달 31일 정부는 마침내 공식적으로 「쌀 불가」원칙을 버렸다.
정부 차원의 지원 원칙도 퇴색해 온 감이 있다. 애초에 대북 식량지원 논의재개 조건으로 대남 비방금지, 북한 당국의 공식 요청, 한반도내 당사자간 회담개최 등 3원칙을 내 걸었다. 하지만 3원칙의 어느 하나도 충족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6월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를 통해 300만달러어치의 곡물을 북한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남북 대화 전제는 「대규모, 본격적」일 경우라고 토를 달았다.
이렇게 조금씩 입장을 바꾸는 과정에서 정부는 국민의 이해와 여론 수렴 등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발표전까지는 무조건 보안을 유지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는 미국 등 관련국의 입장과 북한의 외교전략, 국내외 여론, 국내 정치상황 등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가운데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한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쌀지원 문제를 포함, 현 정권의 대북 정책이 갈짓자를 그려왔다는 상식도 이렇게 형성됐다.<김병찬 기자>김병찬>
◎북 동포돕기 광고낸 배삼준씨/“10만원이면 어린이 3명 1년 살아”/2,500만원 기부,모금운동 앞장/대기업체 시큰둥 반응에 실망
『북한 어린이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죽어간다는 보도를 접하고 더 이상 방관하고 있을 수만 없었습니다. 또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 자아실현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모피의류 업체인 (주)가우디 배삼준(46) 사장은 북한동포 돕기에 선뜻 2,500만원을 내놓았다. 이달 중순께 중앙일간지에 「우리가 당장 실시해야 할 두가지」라는 제목으로 북한동포 돕기와 과외 금지를 촉구하는 내용의 광고를 냈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광고에서 그는 『10만원이면 꺼져 가는 어린 생명 3명이 1년을 견딜 수 있다. 북한 동포를 살리고 통일에도 기여하게 될 적극적인 정성이 필요하다』며 계좌를 개설해 모금운동에 나섰다.
그는 실향민이 아니다. 돈이 남아 주체를 못할 정도로 여유있는 기업가도 아니다.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동포에 대한 연민 외에 다른 아무런 이유가 없다. 『처음에는 우리가 보내는 쌀이 군량미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또 쌀을 싣고 간 배에 인공기를 게양하도록 했던 일도 떠올라 망설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외국에서도 돕겠다는 마당에 우리가 「나 몰라라」고 할 수 있나요』
신문에 광고를 낸 후 격려전화가 밀려 와 뿌듯했다. 그러나 실망스러운 일도 많았다. 정작 큰 돈을 낼 수 있는 대기업들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당국의 반응도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광고가 나가자 내무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 『기부금품 모집법에 어긋난다』며 『북한이 군량미를 풀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가 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충고」를 해왔다.
재이손 사장 이영수씨가 검찰을 혹독하게 비판한 신문광고를 내 화제를 불러일으킨 후여서 사회문제를 제기하는 광고를 통해 기업 홍보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도 나왔다. 『기업하는 사람이니 그런 효과를 100% 무시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홍보효과를 겨냥한 것 치고는 비용이 많이 들었어요. 성금만도 2,500만원인데 중소기업으로서는 결코 적은 부담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가 개설한 구좌에 모여 든 돈은 600만원. 대부분 학생이나 일반 시민이 조금씩 보낸 돈이다. 그는 『돈은 녹색연합에 보내 적절한 통로로 북한에 옥수수를 지원하도록 할 것』이라며 『다른 기업도 북한동포 돕기에 나서는 도화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신문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이제 모두 일자리로 돌아 갑시다」는 제목의 이 광고는 한보사태로 어수선해 진 사회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국민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갈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진동 기자>이진동>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 서영훈 공동대표/거창한 명분아닌 ‘내형제’ 돕기/옥수수 10만톤 목표 2차 캠페인
96년 7월 발족한 「우리민족 서로돕기 운동본부」는 민간 차원의 첫 대북 지원활동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특히 각 종교단체와 20여개 민간단체가 대거 참여해 대북 식량 지원 운동의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발족이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한총련사태 등 잇단 악재를 만난 데다 홍보부족으로 어려움도 겪었다.
서영훈(75) 상임 공동대표는 『어려움도 있지만 시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운동이 정상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운동본부는 지난해 9월 1차 모금액 1억7,000만원 어치의 밀가루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북한에 보낸데 이어 중국 현지에서 북한에 전달할 옥수수 1만5,000톤 구매계약을 끝낸 상태다.
『이 운동은 「한 가족」을 돕자는 운동입니다. 무슨 거창한 명분이나 정치적 계산이 있는 게 아니지요. 그저 순수한 동포애에 입각한 자발적인 운동일 따름입니다. 굳이 따지자면 정부차원의 화해 노력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마당인 만큼 순수 민간운동이 평화 분위기 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나아가 우리 또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일체화 운동」의 작은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운동본부는 지난 9일부터 옥수수 10만톤(170억원)을 목표로 제2차 범국민 캠페인에 들어가 있다. 순수 민간단체가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싶은 목표액이다. 『돼지 저금통을 털어 보내는 고사리손과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성금을 쪼개 보내는 서민들의 정성이 모여 기적을 일궈 내리라고 믿습니다. 욕심을 낸다면 그래도 여유있는 기업인과 경제인들이 활발히 참여해 줬으면 하는 겁니다』
평안남도 덕천이 고향으로 고희를 훌쩍 넘긴 그의 안타까운 바람은 또 있었다. 『민간운동은 한계가 있어요. 남북한 당국자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와는 상대하지 않겠다는 북한 태도가 안타까워요. 모든 문제가 잘 해결돼 운동본부가 하루 빨리 문을 닫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습니까?』<황동일 기자>황동일>
□북한 쌀 관련일지
△95.6.17=베이징(북경) 비공식 실무접촉. 차관급 쌀회담 개최 합의.
△95.6.19=남북한 1차 베이징 쌀회담. 쌀 15만톤 무상지원 합의.
△95.6.26=쌀 1차 선적분 북한 청진항 도착.
△95.7.18=2차 베이징 쌀회담 결론없이 폐막.
△95.8.9=북한 쌀수송선 억류로 쌀회담 무기연기.
△95.9.27=3차 베이징 쌀회담 개막, 10월1일 결렬.
△96.1.7=정부, 대북 쌀지원 및 남북협상 연계 방침 재확인.
△96.4.5=정부, 북한의 4차 쌀회담 제의를 조건부로 거부.
△96.5.11=북한, 「범종단 북한수재민 돕기 추진위원회」에 쌀지원 요청. 정부는 불가방침 재확인.
△96.9.18=북한 잠수함 강릉 침투.
△96.12.29=북한 잠수함 사건 공식사과, 정부 대북지원 재개 의사 표명.
△97.2.7=정부, 세계식량계획(WFP)의 대북 식량지원계획 참여의사 표명.
△97.2.20=정부, 600만달러 상당의 식량지원 공식 발표.
△97.3.21=정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식량지원 긍정 검토 방침 발표.
△97.3.31=정부, 민간차원의 대북 쌀지원 공식 허용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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