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던 까치·산비둘기도 ‘재입산’/계곡엔 뿌연 잿가루 아직 그대로사상최악의 산불로 기록된 강원 고성산불이 23일로 발생 1년이 됐다. 숯덩이로 변한 소나무숲은 그동안 껍질이 벗겨져 여기저기서 허연속살을 드러내 더욱 흉물스럽게 변했다. 불탄 소나무들이 곳곳에 베어지고 나뒹굴어 전국 최고의 송이밭 명성은 「전설」처럼 들렸다.
그러나 자연의 위대한 복원력은 인재로 폐허가 된 대지에도 생명을 움트게 했다. 어느덧 새로운 생태계가 소리없이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제비꽃 애기붓꽃 양지꽃 고사리 우산나물 잔대 비비추 엉겅퀴 민들레 등 초본류가 제철을 만나 앞다투어 고개를 내밀었다.
초피나무 철쭉 진달래 상수리나무 갯버들나무 다래나무 굴참나무 참대나무 싸리나무 등 관목류도 세를 확보해 가고 있었다. 소나무숲이 사라지면서 큰 나무 때문에 못자라던 초본·관목류가 일조량을 충분히 받아 우점종으로 자리를 굳힌 것이다. 나물캐는 아낙네들은 『불난 자리에는 고사리가 많다』며 손놀림이 바쁘다.
산불이후 한마리도 남김없이 떠났던 새들 가운데 박새 까치 산비둘기 등 5, 6종이 찾아들었다.
반면 하늘을 뒤덮었던 소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등 교목류는 이제 겨우 15∼30㎝크기의 새끼나무로 드문드문 커가고 있었다.
그러나 거꾸로 관목류에 눌려 잘 자랄지 의문이다. 당국에서 지난해 심은 소나무가 일부지역에서 우점종으로 자리잡은 참대나무에 눌려 제대로 크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이 제대로 자라려면 30∼4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 지역 계곡은 아직도 회복불능의 상태였다.
청정 1급수로 가재가 살았던 죽왕면 오봉리―인정리 계곡. 뿌연 침전물이 두껍게 덮이고 가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계곡물에 재와 숯덩이가 흘러들면서 수질이 알칼리성으로 변했고 여과·침전지 역할을 하던 산의 토양이 제기능을 못해 재와 유기물 점토 등이 그대로 계곡 바닥에 쌓여 있었다.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 것이다.
숲이 사라지면서 물도 함께 없어졌다. 정일순(61·죽왕면 삼포1리)씨는 『이 일대는 계곡수를 농업용수로 쓰는데 물이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었다』며 『모내기철이 되면 물전쟁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산불 피해지역은 3,800여㏊. 산림청 고성군은 일부 자연복구 대상지역을 제외하고 2001년까지 203억여원을 들여 피해지역에 소나무 고로쇠나무 잣나무 등 8개 수종을 조림할 계획으로 최근 불탄 소나무들을 베어내고 있다.<고성=곽영승 기자>고성=곽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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