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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위에서(정달영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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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위에서(정달영 칼럼)

입력
1997.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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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은 요즘 정치인들의 피곤한 처지를 빗대서 한 의원이 한보청문회 도중에 내뱉은 말이다. 담장 밖으로 떨어지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옥살이를 피할 수 없는 게 정치인들의 신세요 운명이라는 뜻이다. 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법을 어기지 않고서는 우리나라에서 정치를 한다는 것이 아예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아슬아슬한 것은 그러나 「교도소 담장 위」의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국회 국정조사특위의 한보청문회를 보는 국민의 마음은 더 초조하고 더 피곤하다. 「앞만 본다」고 하는 검찰 수사가 진행중인 가운데 국회의 한보청문회 생중계가 연일 계속되지만, 한보사태의 실체적 진실은 과연 기대대로 명명백백하게 드러날 것인가. 만에 하나, 이러고도 진실을 밝히는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때에 겪게 될 국민적 좌절과 실의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에도 이 나라 민주주의에는 과연 미래가 있다고 할 것인가….

그런 걱정의 한가운데로 이번에는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가 서울에 안착했고, 또한번의 「리스트 지진」이 예고되는 중이다. 아마도 이것은 「하늘이 놀라고 땅이 움직일만한」 큰 사건의 연속이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북한 동포의 아사소식은 여전히 계속되고, 그들을 위한 식량지원은 인도주의와 국제정치의 흥정 사이를 표류한다. 그 장면은 마치 역사의 단애와 시대의 급류가 큰 화폭을 이루고, 그 사이에 배신과 좌절과 절망이 구름이 되어 출몰하는듯한 격렬한 모습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화법대로 「그래도 지구는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어제(4월22일)는 마침 전세계가 동시에 기념하는 「지구의 날」이었다. 한해에 하루쯤 「우주선 지구호」의 동승자들이 그들을 실어나르는 지구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더 이상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한보태풍」과 「황장엽 지진」이 아무리 힘겹고 긴박한 우리의 당면한 현실이라 하더라도, 「허공에 뜬 작고 푸른 공」으로서의 지구를 보는 우주적 시각 또한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아나톨 프랑스의 표현으로는 「지구는 우주의 무한한 사막 가운데서는 한 알의 모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고뇌가 지구 위에만 있는 것이라면 그 지구는 지구외의 온 우주 보다도 위대하다」고 한다. 사막의 모래알로서의 지구, 그러나 온 우주보다 무겁고 큰 지구를 생각할 때 우리의 사고는 그 지평이 갑자기 넓어진다.

지난 19일자 한국일보는 네오포커스 특집 「멸종 카운트 다운」으로 위기에 처한 지구생태계를 증언했다. 지구상에서는 매시간 3종, 매일 74종, 매년 2만7,000종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 멸종하는 생물이 매일 150∼200종에 이른다는 또다른 환경연구단체의 보고도 있다. 한국으로만 국한하면 총 2만8,000종의 생물중 70∼80종이 현재 「멸종 직전」이다. 생물이 멸종해간다는 것은 생물의 하나인 인간에게도 멸종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예삿일로 보아 넘길 사안이 아니다.

올해 1997년은 인류 최초로 「인간환경선언」을 이끌어냈던 1972년의 스톡홀름회의로 부터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1992년 「의제21」을 합의했던 리우 데 자네이루 회의로 부터는 5주년이 된다. 스톡홀름 25년과 리우 5년을 함께 기념하는 올 6월5일의 세계환경의 날 회의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덜 알려져 있다. 서울 유엔환경회의의 주제는 「온누리의 생명을 위하여」. 21세기 지구환경을 향한 세계인들의 「서울선언」이 채택될 예정이다.

지구는 지금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으로, 그곳에 사는 인류는 정신문화의 황폐화와 도덕적 타락으로 함께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형국이다. 가장 무서운 일은 인간 복제에까지 이른, 과학을 빙자한 인간의 오만이고 「생명에의 외경」의 실종이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 국토에서, 이 지구상에서 우선적으로 「멸종」시켜야 할 것은 생명경시, 생명파괴의 여러 현상들이다. 또 「돈이 아니면 안되는 한국의 정치부패」이다.<본사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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