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명예를 먹고 사는 존재라고들 한다. 자신의 명예를 목숨만큼이나 중요시한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정치인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 어렵게 쟁취한 지위나 자리를 미련없이 박차고 나가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왔다. 거짓변명으로 사태를 호도, 비굴하게 연명하느니 차라리 떳떳하게 명예를 지키겠다는 의지일 것이다.우리는 그간 검찰의 한보비리 조사과정을 주시해 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혐의 정치인들 가운데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사람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던 것같다. 검찰에 가기전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는가. 소위 「리스트」가 보도되자, 배후음모설로 모면하려 했다. 심지어는 해당 언론사에 대해 「무고 제소」위협까지 했다. 그러나 검찰청을 나서면서 「측근이 받은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거나, 혹은 「아무런 조건없이 선거때 받았다」는 등 거짓변명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지금 국민들은 그들이 받은 돈에 대가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심이 있는 게 아니다. 또 그들에게 실정법상의 책임이 있느냐, 아니냐를 가리자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 악덕기업인으로부터 부정한 돈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스스로 적절한 처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또 그렇게 하는 것이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는 이와관련, 김수한 국회의장의 경우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의장도 역시 한보 리스트에 올랐었다. 수사결과, 그도 92년 총선 직전 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이 사실무근인 일로 입법부 수장을 음해하고 있다」거나, 심지어는 「입법부 수장을 소환하는 것은 국회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했던 항변이 쑥스러워지는 상황이었다.
당초 우리는 김의장의 항변에 일말의 기대를 걸었었다. 입법부 수장의 말의 무게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결백주장도 결국 사실 아님이 드러난 셈이다. 입법부 수장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낭패 본 사람들의 허탈감은 무엇으로 씻어낼 수 있을까.
지금 그의 주변에선 한보로부터 받은 돈에 관한 실정법상의 가벌시효가 이미 지났으며 그나마 낙선했던 14대 총선때의 일이니 대가성의 의미도 상실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대한민국의 정치가 통째로 부패해 있다 해도 일국의 입법수장만은 남다른 곳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점 김의장은 유의해야 할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정치판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야 없는 일이다. 국회가 자정노력을 선도할 때다. 여기서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거듭 지적하지만 우리는 이번 한보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검찰의 처리를 기다리기 전에 적절한 자기 처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과연 어떤 처신이 국가와 또 최소한 그가 속한 국회를 위하는 길인지 모두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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