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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교 82주년 맞는 원불교 이광정 종법사(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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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교 82주년 맞는 원불교 이광정 종법사(한국인터뷰)

입력
1997.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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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봉공으로 난국 극복을”/연쇄적 소아주의 벗고 겸허히 자기 반성/곪아터진 사회모순 바로잡는 계기 삼아야/현대는 공존의 시대 다른 종교 비방하는 배타주의 고집은 미성숙한 신앙인 자세민족종교 원불교가 28일로 창교 82주년을 맞는다. 이 날은 원불교 최고의 봉축일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대각개교기념일이다. 94년 9월 2세대 지도자로는 처음 종단의 정신적 지주로 선출된 이광정(61) 종법사를 전북 익산시 중앙총부 종법원 집무실에서 만났다. 소태산 대종사, 정산 종사, 대산 종법사를 이은 이 종법사는 1세대 지도자들이 다진 내적 기반을 통해 축적된 역량을 사회에 환원하고 보은하는 자세로 종단을 이끌겠다고 말했다.<편집자 주>

□대담:이기창 문화부 차장

―대각개교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날의 의미를 말씀해주십시요.

『대각개교절은 소태산 대종사께서 나라 잃은 어려운 시절에 국가와 민족을 구하자는 원력으로 깨달음을 얻은 봉축일입니다. 그 분의 가르침과 교법에 담긴 진리를 삶에서 실천한다는 마음 자세를 다지는 의미가 더 큰 축일입니다』

―3년 가까이 종단을 이끌어오면서 느끼신 소회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제껏 종법사가 됐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조금 다른 직책으로 옮겼다고 생각하지요. 평소 대종사의 가르침인 무아봉공을 비롯한 원불교의 교법을 널리 알리지 못해 안타깝게 생각해왔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부족했던 거지요. 그러한 가르침을 많은 사람에게 스며들게 했다면 지금같은 혼탁한 사회를 순화하고 예방하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곤 합니다. 91년 대종사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펼쳐오고 있는 은혜심기운동은 무아봉공의 한 표현이자 실천입니다. 이 운동은 그래서 있는 물건을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는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종사의 성자혼을 온누리에 심고 가꿔서 병든 사회와 인류를 구원하는데 그 참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불교는 드러냄없이 종교의 역할과 사명을 묵묵히 실천하는 종단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개혁할 점은 없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교당운영을 출가자 중심에서 재가자(신도)중심으로 바꾸는 게 우선 시급한 과제입니다. 종단의 예법도 일부는 시대상황에 맞는 손질이 필요합니다. 원불교의 세계화를 겨냥해 교리를 영어 일본어 등 각국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국제교화를 대비한 노력입니다』

―한보비리와 대통령 차남의 국정개입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위기상황은 총체적 난국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국난극복의 지혜를 들려주시지요.

『현재의 난국은 사회 모든 분야의 모순이 곪아 터지면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러한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면을 엿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과거 정권에서는 이 못지 않은 부정과 비리의 많은 부분이 은폐되고 감춰졌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잘 잘못이 가려질 수 있는 사회가 된 것은 문민정부의 공이라고 여겨집니다. 문제는 난국을 계기로 잘못된 관행과 제도를 고치고 국민의 지혜를 모아 올바른 수습의 방향을 잡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만을 버리고 서로를 믿는 자세를 다시 찾는다면 미래는 결코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자유를 방종으로 착각하고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와 졸부의식, 권력을 잡으면 농단하는 어리석음 등은 겸허한 삶의 자세가 부족해서 비롯됩니다. 모두 겸허한 자세로 돌아가야지요』

―이 기회에 정치가나 국민에게도 바른 삶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요즘 우리 사회는 자기 반성보다는 남만 탓하는 「네 탓이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남의 잘못은 잘 지적하면서도 자기 허물은 못봅니다. 대종사께서는 잘못을 고치고 바로 잡는 모습, 어리석은 마음을 지혜로운 마음으로 돌리는 자세를 강조하셨습니다. 어리석음의 대표적 행위는 바로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의 잘못만 고집하는 것이지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 있는 삶의 자리를 찾는다면 부정부패와 비리도 스며들 틈이 없게 됩니다. 정치도 올바른 방향으로 갑니다. 속칭 「한보리스트」를 보면 돈받은 국회의원과 공직자가 엄청나게 많은 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루된 정치인마다 돈을 많이 써야하는 우리의 선거풍토를 탓하는데 이 기회에 국민이 앞장서서 돈 안드는 정치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종교인의 깨끗한 수행의 삶이 간절해집니다. 종교와 종교인의 역할과 자세는 무엇입니까.

『무릇 어느 종교이든 사회적 기능은 비슷합니다. 저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대체적으로 세 가지로 여깁니다. 혼탁한 세상에 맑은 공기를 제공하고, 욕심에 가리워 어두어진 마음에 밝음을 주고, 이기적으로 각박해진 세상에 훈훈한 자비로움을 베푸는 그런 기능이지요. 원불교에만 국한한다면 이러한 기능이 올바로 실천되도록 마음공부를 강조합니다. 마음공부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사회에 폐가 되지않는 삶을 살고 여력이 있으면 나보다 못한 이웃과 고통을 함께하는 마음을 가지면 됩니다. 원불교에는 유무념 공부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마음공부의 방편입니다. 원시사회와는 달리 복잡 다기화한 현대사회에서 부주의(무념)는 자기 혼자만의 피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에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올 수 있거든요. 멀리는 70년대 이리열차폭파사고, 가깝게는 삼풍백화점참사나 성수대교붕괴사건 등이 이를 잘 말해주지 않습니까. 현대사회의 모든 인위적인 사고는 무념에서 비롯됩니다』

(원불교에서는 마음공부를 위한 유무념시계가 있다. 시계의 문자판에 매일 유무념을 체크해 기록하는 장치를 해놓아 마음공부에 사용한다)

―참신앙인의 삶과 자세는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관념에만 머물면 그건 죽은 신앙입니다. 신앙인은 공익정신, 즉 남을 위해 항상 일하려는 태도를 잃어서는 아니됩니다. 저는 현재의 우리 사회를 「연쇄적 소아주의」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진단합니다. 국가보다는 정당, 정당보다는 정파, 정파보다는 계파, 계파보다는 개인을 앞세우니 나라가 잘될리가 없습니다. 자유는 나무를 뽑는 자유가 아니라 나무를 심는 자유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남에게 봉사하는 자유가 절대 필요합니다』

―다종교가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최근 종교의 이익집단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종교는 봉사하는 집단입니다. 한국처럼 유례없는 다종교사회에서 종교는 나름대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배타주의입니다. 배타주의는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지요. 공산주의는 배타주의 때문에 멸망했습니다. 종교도 마찬가지라고 여깁니다. 현대의 특징은 공존의 사회입니다. 그래야 재앙을 면하고 낙원을 이룩할 수 있거든요. 어떤 계층이나 집단, 또는 종교를 파멸시키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타종교를 비방하면 미성숙한 신앙인으로 비판받습니다』

―평소 통일문제에 남다른 관심이 많으신 줄 알고 있습니다.

『저는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대화해, 대사면, 대해원, 대수용, 대협력, 대합의 등 여섯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형의 입장에서 북한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지 말아야 합니다. 북측의 어지간한 주장은 수용하는 아량도 필요합니다. 남북교류 문제에 있어서 민간의 교류를 정부가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북한에게 남한이 희망의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민간교류의 확산이 선행돼야 합니다. 굶주림에 고통받는 북한동포를 돕는 문제도 이러한 차원에서 종교계를 포함한 민간지원을 막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광정 종법사는 2시간 가까운 대담을 끝내면서 언론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다. 우리 언론이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건망증」이 심하다고 아쉬워했다. 문제점만 제기하고 해결의 과정과 결과를 점검하는 자세가 부족한데 앞으로는 이를 유념해주기를 바란다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약력

▲1936년 전남 영광군 북평리 출생 ▲54년 원불교 입교·출가 ▲63년 원광대 원불교학과 졸업 ▲62∼73년 법무실 법무, 운봉·익산교당 교무 ▲73∼77년 교무부장 ▲77∼82년 문화부장 ▲82년 최고의결기구인 수위단원 피선 ▲82∼86년 서울사무소 소장 ▲86∼88년 서울동부교구 교구장 ▲88년 수위단원 2차피선 ▲94년 9월 종법사 피선 ▲「주세불의 자비경륜」 「분단역사 극복의 길」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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