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대통령 비자금사건이 휘몰아쳤던 작년 이맘때 경제의 핵심테마는 단연 「신재벌정책」이었다. 정경유착의 한 축인 재벌구조를 대수술하겠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부의 대물림방지(세제), 독단적 오너견제(금융), 문어발 확장차단(공정거래) 등 모든 정책수단이 총동원됐고 관료들은 너나 없이 반재벌론자가 됐다. 그러나 몇달도 못돼 정책구호가 「역사바로세우기」에서 「경제살리기」로 바뀌면서 재벌개혁 프로그램도 사라졌다.1년이 지난 지금 나라는 또다시 비자금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재벌은 권력을 빌어 이윤을 추구하고 정치인은 금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는 정경야합의 행태는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재연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저 돈준 기업인과 돈받은 정치인의 면면 뿐이다.
하지만 한보사태를 보는 정부의 시각은 1년전과 너무도 판이하다. 원인을 해당 기업인과 정치인, 각 개인의 파렴치함으로 몰고가는 분위기다. 그 부도덕성엔 어떤 지탄도 지나치지 않겠지만 한국의 재벌,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누구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개연성속에 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뜯어고칠 것은 뇌물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경유착구조다. 몇명 구속한다고해서 끊어질 정경유착의 고리도, 바로 세워질 역사도 아니다.
만약 1년전 신재벌정책이 굴절없이 시행됐더라면 한보의 재앙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총수가 제멋대로 비자금을 만들어(오너독단) 마구 사업을 벌리다(문어발경영) 부자가 함께 쇠고랑을 차는(세습경영) 한보의 모습은 당초 신재벌정책이 뿌리뽑고자 했던 바로 그것들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한보를 막으려면 정부는 용도폐기했던 정경유착차단 프로그램부터 재가동해야한다. 현 경제팀이 제일과제로 삼은 시장원리의 게임룰도 주요 경기참여자(재벌)들이 달라지지 않는 한 결코 작동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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