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자부심 깃든 ‘여자의 일생’한국일보사 주최 제15회 여성생활수기 공모에 총 57편이 응모, 3편의 수상자가 가려졌다. 당선된 3인은 온갖 신고속에서도 삶의 애착을 버리지 않았던 어머니, 한사람의 여성이자 당당한 노동자로 일어선 주부, 불굴의 향학열로 39세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여성 등으로 자신들이 겪었던 바를 진솔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다음은 심사를 맡았던 두 작가의 심사평과 수상자 3인의 인터뷰 내용이다. 당선수기 중 최우수작은 24일자에, 우수작은 26일과 29일자에 각각 게재된다.<편집자 주>편집자>
◎최우수상 이옥순씨/가난속 잘 자라준 아이들에 고마울 뿐
한국일보사 공모 여성생활수기 최우수작인 「딸들아, 가난은 죄가 아니더라」의 주인공 이옥순(43·전남 순천시 서면 선평리 889)씨는 『이렇게 큰 상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구김살없이 착하게 자라준 아이들에게 고마울 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씨의 삶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 칠남매중 장녀로 태어나 「입 하나라도 덜어볼까」하고 열여덟살에 결혼한 것이 더욱 가파른 빈곤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양조장 운전기사인 남편은 술과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고 이씨 혼자 두딸과 아들을 돌보느라 농삿일 품팔이는 물론 간장공장 마늘공장 양말공장 식당 등에서 안해본 일이 없다.
이씨는 『우리 아이들만은 남 못지않게 키워보겠다는 각오로 일을 했지만 둘째가 세살때 엄마가 일하러 나간 사이 다리에서 떨어져 머리가 움푹 패였을때는 정말 가난도 자신도 몹시 미웠다』고 들려준다. 80년 겨우 마련한 5평짜리 단칸 셋방은 하천보다 낮아 큰 비가 내리기라도 하면 이내 허리까지 물이찼고 화장실 오물이 밀려들기까지 했다.
가난하고 힘든 생활에도 위안이 되어준 것은 꿋꿋하게 자라는 아이들. 딸 둘은 순천여고를 나와 현재 서울의 직장과 광주의 대학을 다니고 있다. 막내인 아들 역시 매산고등학교의 「장학반」에서 공부를 곧잘 한다고. 이씨는 『외지에 있는 딸들에게 매일 전화하라고 공중전화카드를 사주었더니 정말 매일 전화를 한다』며 『여자로서는 포기하고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하려고 했는데 어느 정도는 성공한 모양』이라고 웃는다.
지금은 남편도 달라져서 술과 도박을 끊었고 88년에는 푼푼이 모은 돈으로 부부가 모래를 져나르는 고생 끝에 새집을 지어 이사도 했다. 이씨는 『물난리를 겪지 않아 편안하게 잠잘 수 있어 좋다』며 기뻐하던 아이들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고 한다. 이씨는 이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서 90년 한국방송사업단 주최 「알뜰살림 저축부업」수기부문에 입상도 했다.
그동안 틈틈이 써온 글을 책으로 엮어내는게 꿈인 이씨는 『글을 쓸때마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도 많을텐데 너무 엄살부린 것 같아 미안하다』면서 『세상이 힘들어도 언제나 희망은 있고 노력의 대가만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순천=안경호 기자>순천=안경호>
◎우수상 박진남씨/아내·엄마 존재서 ‘나’ 찾은 것 같아요
『주부나 아내, 엄마로만 존재하다가 이제 비로소 「나」라는 개인으로 선것 같아요. 인생길에서 쉽게 허물어지지 않고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을 몸소 보여준 돌아가신 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여성생활수기 우수상 수상자 박진남(35·서울 동대문구 제기 2동)씨는 『며칠전 탈락하는 꿈을 꾼 것이 수상을 계시해준 셈이 됐다』며 몹시 기뻐했다. 박씨의 수기 「내 인생의 길목에서」는 전문대졸 고학력 주부이면서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한 노동으로 받아들여 열심히 사는 모습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박씨는 스스로 「아르바이트 아줌마」를 자처하며 음식점 시간제 종업원으로 나선 이유를 『모든 경제부담을 남편 등에 떠넘기고 온종일 TV앞에 멍하니 앉아 소일하는 것이 너무 슬퍼서』라고 말한다. 88년 서울예전 동창생과 결혼하면서 이른바 「전업주부」가 된 박씨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차단당한 듯한 고립감에 절망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토로한다. 또 문화적 정신적으로는 늘 중산층이라고 자부했지만 실생활은 한달이라야 영화 한편 보지못하고 생활고에 허덕이는 서민. 할 수 있는 일이 식당종업원 정도라는 사실에 처음엔 서글펐지만 문화에 대한 갈증과 고립감으로부터의 탈출욕구는 서글픔을 금세 오기로 변화시켰다.
지난달까지 고려대 앞 음식점에서 일했던 박씨는 임신 7개월째로 몸이 무거워져 출산과 산후조리를 할 동안 잠시 일손을 놓기로 했다. 정든 주방아주머니는 『해산구완은 내가 해줄테니 몸 풀면 바로 연락하라』며 박씨의 두손을 꼭 쥐어주었다고. 비디오판매점을 하는 남편은 수상소식을 알리자 『남편 망신시켰으니 수상금 절반은 내 차지』라고 농담을 해 박씨를 웃게 만들었다. 박씨는 수상금으로 충남 예산에 사는 시어머니께 결혼후 처음 든든한 용돈 봉투를 드릴 생각에 마음이 흐뭇하다고 한다.<이성희 기자>이성희>
◎우수상 조임생씨/늦깎이 공부 뒷바라지 남편에 감사
『서른 아홉에 시작한 공부로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진 것만해도 행복한데 더구나 이런 내 인생을 고백한 글로 상까지 받게 되니 부끄럽기도 하고 기쁩니다』
「가슴깊이 묻혀있던 향학의 불씨 하나」로 여성생활수기 우수작에 선정된 조임생(45·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기쁘다』는 말을 연발한다. 조씨는 『어려웠던 지난 날을 기억하는 것조차 힘들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돌이켜 봐도 될 것 같았다』고 수기를 응모하게 된 순간을 설명한다. 조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방탕으로 집안이 기울어 중학교로 배움을 중단해야 했던 한때문에 고등학생 아들 둘을 둔 중년의 나이에 공부를 시작, 올해 방송대를 졸업하기까지 의지의 세월을 글로 풀어냈다. 조씨는 『나보다 고생한 사람도 많을텐데 괜히 나만 고생한 것처럼 비쳐질까봐 부끄럽다』고 말한다.
사실 조씨는 95년 「창조문학」 「아동문학연구」 신인상 응모에 시와 동화가 당선돼 문단에 등단한 작가. 조혜림이라는 필명으로 알려져있다. 마흔 하나에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에 입학, 줄곧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에 매달렸고 95년에 방송대 국문과에 편입해 2년만에 학사학위를 땄다. 한번도 『공부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남편 노춘경(54)씨가 가장 고맙고 든든한 후원자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남편은 아직도 매일 도시락을 싸다니는 성실한 생활을 하며 조씨를 뒷바라지했다.
『젊었을때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으나 나이가 들면서 미움과 화해를 하게 됐다』는 조씨는 『순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기만 했다. 하지만 어려운 지난 날이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된 것같아 오히려 행복하다』고 말한다.<노향란 기자>노향란>
◎심사평/오정희 작가/여성으로서 겪어야했던 희생과 고통/꿋꿋하게 이겨내는 모습들 ‘감동적’
세상살이가 유난히 어려웠거나 남다른 삶의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아온, 혹은 살아가는 내력에 깃들인 슬픔과 한과 기쁨, 깨달음들을 차근차근 써내려간 글들을 읽으며 일견 평범하고 소박해보이기만 하는 사람살이의 복잡한 켯속과 지난한 사연에 숙연해지기도 하고 애틋하게 마음이 젖기도 했다. 멀리 이국땅에서 뿌리내리기 까지의 고생이나 장애자로 살아가는 힘겨움, 폭력적이고 불화한 가족관계, 제도와 인습의 희생물이 된 인생 등 다양한 주제와 사연들이지만 여성이기에 치뤄야하는 희생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기쁨과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고 품위있게 살아가려는 꿈이 있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수기를 쓴다는 것은 넋두리나 자기과시가 아닌, 열악한 환경과 조건들이 불행과 고통을 주지만 주저앉지않고 그것과 싸우면서 얻은 성취의 기쁨과 인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소중한 깨달음을 더 힘든 처지의 사람들과 나누면서 용기를 주고싶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소설로 엮어도 저마다 열권은 넘을 것 같은, 투고해온 분들의 삶과 의지, 용기에 경의를 표하며 규정상 세편의 글을 뽑았다.
「딸들아, 가난은 죄가 아니더라」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배움과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한 전형적인 한국여성의 삶, 그 악순환의 고리를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일생을 통해 극복해가는 여정이 진솔하게 그려져있다. 한바탕 물난리를 치르고 난 뒤 못쓰게 된 가재도구며 무너진 연탄더미로 탄광촌이 되어버린 집에서 밝은 보름달과 맑게 흐르는 물을 보며 웃을 수 있는 마음이나, 하루일을 끝낸 밤에 부부가 함께 집을 짓는 광경, 모진 가난 속에서도 한시도 놓지않은, 자애롭고 지혜로운 엄마가 되고자 하는 마음, 노년에 접어든 남편을 바라보는 애틋한 시선 등이 감동으로 와닿는다.
「내 인생의 길목에서」는 대학졸업의 학력을 가진 주부이면서 그닥 절박하지않은 살림형편인데도 음식점 종업원으로 일하는 모습이 건강하고 당당하다. 글의 사이사이 어머니의 이야기를 끼워넣으면서 자신의 노동에 대한 존중감과 떳떳함이 바로 강인한 생명력이며 그것은 평생 김밥 광주리를 이고 다니며 장사해 자식들을 기르고 가르쳤던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말하는 방법도 훌륭하다. 어머니에 대해 「어머니 처럼 살고싶다」는 토로처럼 강한 감사와 사랑의 고백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 깊이 묻혀있던 향학의 불씨 하나」는 평생을 두고 꺼지지않는 배움에의 열망을 어렵게 이루어간 과정을 차분하게 써내려간 글이다. 어린시절부터 거듭되는 역경속에서도 배움에의 의지와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반듯하게 하고자 하는 꿈을 잃지않고 키워왔다는 것, 그것은 특별한 용기이고 능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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