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국제담당비서가 서울에 도착했다. 그가 베이징(북경)의 한국총영사관에 망명을 신청한지 67일만의 일이다. 황씨는 이날 측근인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김덕홍 전 총사장을 대동했다. 먼저 우리는 황씨일행이 본인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무사히 서울에 도착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그간 황씨일행 망명의 성사를 위해 고생한 관계당국의 노고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인도적 견지에서 황씨일행의 자유의사를 존중, 이들의 서울행에 기꺼이 협조한 중국정부와 필리핀정부에 대해서도 좋은 선례로 기억해야 할줄 안다.
우리가 황씨일행의 입국을 환영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의 서울행이 떠나온 북한정권에는 「경고」를, 한국정부에는 「충고」적 의미를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그가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북한에는 여간 충격적이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도착성명에서 밝힌 그의 북한체제에 대한 진단은 냉엄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그는 성명에서 『나의 삶의 터전이었던 북조선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으로 이미 희망을 잃은지 오래』라며 『올바른 생각을 가진자는 그것을 표현할 길이 없으며 오히려 견제와 감시속에 제대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이라고 했다. 그는 또 『북조선은 사회주의와 현대판 봉건주의, 군국주의가 뒤섞인 기형체제로 변질됐다』며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건설했다고 호언장담하던 나라가 빌어먹는 나라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황씨는 『북조선당국은 남한을 계급적 원수로 간주하면서 남조선 해방의 기치 밑에 무력통일방침을 정당화하려고 모든 힘을 다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섬뜩한 일이다.
황씨의 증언이 아니라도 그간 우리는 북한의 군사적 맹종주의가 야기할 한반도사태에 대해 우려와 대비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황씨가 증언할 「북한의 실상」에 대해 차분한 자세로 있는 그대로를 파악, 우리의 대북정책에 참고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황씨일행의 입국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는 소위 「파일」이니, 「리스트」니 하면서 성급한 추측들이 많았다. 다만 현시점에서 분명한 사실은 당국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점일 것이다. 황씨의 「보따리」가 있다면 추호의 왜곡됨이 없도록 실체를 정확히 파악한 후 상응하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순서다. 만의 하나, 그 보따리속에 우리체제를 좀먹는 오열세력의 실체가 들어있다면 이는 당연히 발본색원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지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총체적으로 분석, 파악한 뒤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씨의 망명은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봐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성급한 판단이 초래할 수 있는 오판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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