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정치적 이용땐 긴장 고조황장엽 비서의 서울 안착으로 두달 넘게 극비리에 전개돼 온 망명 드라마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황비서의 망명 성공은 북한 최고위층이 적지에 제발로 걸어 들어왔다는, 김정일을 비롯한 북한수뇌부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또 황비서가 갖고 온 정보의 양과 질은 앞으로 우리의 대북 정세 판단이나 정책 방향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칠게 틀림없다.
그러나 황비서가 서울에 있다는 사실이 남북관계에 큰 변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은 황비서가 망명신청을 한지 5일만인 지난 2월17일 관영 중앙통신을 통해 『변절자는 갈테면 가라』고 사실상 망명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북한은 그 이후 황비서에 대해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현재의 남북관계는 미국·중국·일본 등이 개입, 복잡하게 교직돼 있는 국제 구도상의 동력에 따라 밀려가고 있다. 황비서 망명사건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기 힘들도록, 국제관계의 틀이 단단하게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구도의 골자는 미국의 주도 아래 전개되고 있는 대북 지원 및 북·미 관계 개선, 그리고 그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최악의 북한의 경제사정이다. 여기에 한반도의 분란을 원치 않는다는 중국의 경고성 입장이 작용하고 있다.
한 정부당국자는 『북한의 잠수함침투 사건에서 나타났듯이 남북간의 긴장고조 상황에서, 남한을 배제한 북·미 관계는 현실적으로 진전되기 어렵다』며 『북한이 황비서 사건을 일찌감치 「방치」한 것도 대미·대중 관계에 대한 고려가 큰 비중을 차지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미관계와 4자회담은 황비서 망명에도 불구, 급진전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북한의 황비서 망명 인정 및 4자회담에 대한 태도변화, 그리고 한미의 대북 지원 및 북·미관계 개선 등이 패키지로 묶여있다는 것이 대북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문제는 오히려 황비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조사·관리 능력이다. 북중 관계 비사, 김일성의 사망원인, 남한내 친북인사 명단, 북한핵 등 북한 최고수뇌부를 자극할만한 각종 이야기들이 조사과정에서 검증없이 유포된다면 그 결과는 한반도 긴장 고조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우리 정부는 중국의 요청에 따라 황비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황비서에 이어 또다른 최고권력층 인사가 망명을 시도, 북한이 태도를 돌변해 황비서 사건을 재론하는 사태가 초래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남북관계가 북한의 개방·개혁을 전제로 재편 되더라도 예상치 못한 돌출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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