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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갱신과 새로운 결단(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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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갱신과 새로운 결단(문화칼럼)

입력
1997.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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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사건의 사회적 충격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부족하다. 한보충격은 사회와 정치체제의 전체적인 붕괴를 발밑에 느끼게 하고 한국사람의 삶에서 깊은 철학적 불행의식으로 확대된다. 사실 한보의 엄청난 일에 사람들이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은 나날의 삶에서-거리에서, 시장에서, 관청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접하는 괴로움의 원인을 거기에서 다시 확인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구조물이나 기계에도 피로가 있지만, 사회제도에도 피로가 있다. 역사상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왕조의 교체나 혁명도 이러한 피로와 관계 있는 것인지 모른다. 미국 독립혁명기의 제퍼슨은 18년마다 사회는 혁명적인 자기갱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우리사회가 그러한 혁명적 갱신까지 필요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엇인가 근본적인 재정비를 필요로 함은 틀림이 없다. 경제에 있어서 구조적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이 자주 말하여진다. 그러나 정치나 다른 부분에서의 구조 재조정은 별로 이야기되지 아니하였다. 문민정부의 수립을 일단 이러한 필요에 대응했던 것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최근의 현상은 그것이 전적으로 표면적인 조정에 불과했음을 드러내준다.

정치의 재조정 가운데, 현단계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부패 근절보다 적극적으로 공적 영역에서의 정직성과 투명성의 확보이다. 그것 없이는 책임있는 정치질서나 효율적 경제운영이 확보될 수 없고, 합리적 사회계획을 위한 사실적 자료의 확인도 불가능하다.

경제발전의 초기에는 그것이 필요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논자들은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이 정신적 가치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사의 단계에 따라서 통용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에 와서 드러나는 것은 공공도덕이 없이는 사회의 모든 기능이 마비되는 역사의 단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는 「지금이 군을 경계해야 하는 때」라는 말을 하여 시비의 대상이 되었지만, 국가체제 전체가 위기에 처한 오늘의 상황이라면 그의 느낌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내각책임제의 정부였더라면, 최근의 정세에서는 정부가 바뀌어도 몇번 바뀌었을 것이다. 사실 이 시점에서 체제 전체의 위기는 내각제에서의 정부 재조직 정도로도 해결할 수 없게 심각한 것이다. 이대표의 말은,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이러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으로 취해질 수 있다.

세상에는 우리 사회보다도 더 부패한 사회가 얼마든지 있다. 우리도 거기에 끼는 것을 원하는 것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지간에, 우리나라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대체로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진국이란 국가를 군사력, 경제력, 정치질서, 국민복지 등으로 평가하여 하는 말이지만, 그에 상당한 공적 도덕성의 뒷받침이 있어서 선진국이 된다.

영국에 이번 5월1일 총선거가 있다.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기업가로부터 돈을 받은 사람이(액수는 3,000만원 정도로 생각된다) 다시 출마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영국 공영방송의 기자 한 사람이 같은 구에서 출마를 선언하였다. 그는 그러한 부패한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좌시할 수 없어 출마하였으나 그 사람이 출마를 포기하면, 자신도 출마를 그만 둔다는 것이다. 그의 의분에 호응하여 노동당과 자유민주당도 후보를 내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최근 이스라엘의 경찰이 네탄야후 수상의 검찰총장 임명에 관한 부정을 수사하였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임명이 어떤 독직사건의 무마를 조건으로 한 정치거래였다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수상이 탄핵소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우리만은 정직과 기율이 없이도 잘되어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정상적 사회의 운행규칙을 면제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 체제 전체의 철저한 갱신이 없이는 우리 사회는 한발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고비만 넘기면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이나 정당들이 그대로 정치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다. 그것을 허용하고도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우리가 이 시점을 위기로 인식하고 그것을 넘어 단호한 결단으로서 새로운 역사의 단계로 옮겨가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한 것이 될 것이다.<김우창 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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